한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수용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규정을 만들고 있어 수용자 인권 확보에 필요한 구체적인 지침이 마련될 전망이다.
지난 2일 정신지체 장애인 수용시설인 '교남소망의집'(원장 황규인)은 '시설장애인의 인권보장을 위한 실천방안 모색'을 주제로 개원22주년 기념세미나를 열고 '교남장애인인권보장규정' 시안(아래 시안)을 발표했다.
시안은 △자기관리 및 위생 △개인물품 관리 △주거생활 △종교생활 △성생활 △식생활 △프로그램 참여 △신체적·정신적 폭력 방지 등 수용자가 개인 생활에서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와 △직업생활 및 노동기회 부여 △교육 및 학습 보장 △공공서비스 수급 보장 △선거 및 참정 보장 △정보이용 및 접근 보장 △사회생활 등 사회적인 생활에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로 나눠 제시하고 있다.
시설 수용자의 권리 명문화
일부 수용시설에서는 장애인들 개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획일적인 머리모양과 의복을 강요해 왔고, 생활공간을 수시로 견학자 등 타인에게 개방하며 개인물품의 소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안에서는 개인의 취향을 인정해 의복·머리모양·화장 등을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장애인이 화장실이나 목욕공간을 사용할 때에도 '관리편의'라는 핑계로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일부 미신고시설이나 기도원에서 예배 등 종교행사를 일방적으로 강요해온 것에 대해서도 시안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자유의 원리를 시설 장애인들에게도 보장하기 위해 "종교 활동에 대해 전반적 또는 부분적으로 참석을 거부할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이를 제한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또한 수용자에 대한 감금과 폭행, 학대 등 신체적 폭력은 물론이고 장애인을 연령에 상관없이 어린아이로 취급하며 반말과 욕설을 하거나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 등 정신적 폭력도 엄격하게 금지했다.
이외에도 시안에는 노동을 통한 장애인의 소득은 전액 장애인의 소유로 하며 투표 시 대리투표나 특정후보에 대한 투표를 강요당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담았다. 시설 내 컴퓨터, 전화 등 정보매체를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고, 장애인과 시설 직원 사이에 별도의 식사나 식사공간, 특정용어의 사용, 유니폼 착용 등 어떠한 차별도 금지하며 장애인이 시설 안팎에서 외부인과 자유롭게 만나는 것과 외부인을 초청하는 것을 제한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시설 내 인권침해 가해자 처벌
시안에는 인권침해 사실을 보고 받고 조사하는 상설기구로 기관장 직속의 '교남장애인인권보장위원회'(아래 위원회)를 두어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돕도록 했다. 위원회는 기관장에게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와 가해자에 대한 불이익 등 행정조치를 권고할 수 있도록 했으며 권고를 받은 기관장은 이행 여부를 보고해야 한다. 또 인권침해 가해자가 직원일 경우 인사규정에 따라 기관장이 징계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교남장애인인권보장규정' 제정 작업에 참여한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시안은 교남소망의 집의 특수한 상황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인권침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며 "자기결정권이 제한되어 있다는 면에서 장애인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노인, 아동 등 시설 생활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가칭)'시설생활자인권보장법'으로의 확장을 고민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동안 사회복지시설은 장애인·노인·아동·부랑인 등 의사표현 능력이 취약한 사람들이 수용된다는 점에서 수용자 권리보장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이 거듭 제기되어 왔다. 따라서 이번 시안에 대해 세미나 초청 토론자들은 한결같이 환영을 표하면서도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숙경 팀장은 "시설은 소위 '정상'적인 삶에서 내몰린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이 폐쇄적인 환경에서 외부의 지원을 받으며 살고 있고 시설장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생활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쥘 수 있어 가만히 두면 저절로 인권침해가 일어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 이러한 상황에서 "시안은 우리 나라 최초의 구체적인 시설생활자 인권매뉴얼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깊은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박 팀장은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의료서비스 △인권침해 사실조사와 처리의 객관성 보장을 위해 위원회에 반드시 1인 이상의 외부인 참여 보장 △투표시 정신지체 장애인이 두려움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지 않도록 선거보조인 신청 등 시안에서 보안해야 할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안을 발표한 교남소망의집 윤덕찬 재활사업실장은 "이번 세미나에서 지적된 내용을 적극 반영해 10월 초에 규정을 확정지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교남소망의집'은 현재 72명의 정신지체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다. 지난 98년 이후에는 6세대의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을 만들어 16명의 시설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생활하도록 하고 있으며, 사회통합을 위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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