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의 캠프를 준비한 주최 측에서는 교육 참여자들이 ‘성매매경험이 있는 지적장애 청소녀’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참여자들을 직접 만났을 때, 성매매의 경험이 전혀 드러나지 않기도 했다. 물론 성매매에서 쓰이는 용어를 드러내놓고 쓰는 경우도 있다. 지적장애도 알 수 없는 경우, 그 여부가 헤아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참여자들의 공통점은 아마도 청소녀, 그리고 ‘가출’인 듯. 참여자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인권교육에서 참여자의 특성이라고 일러준 내용이 드러났다 말았다, 숨었다 보여다 혹은 전혀 보이지 않는(물론 이 역시 그 특성에 연유한 것일 수 있겠지만) 경우라니… 꼬여있는 상황만큼이나 복잡해지는 교육이 아닐 수 없다.
날개달기 - 이제 막 오르는 고개
3주간의 캠프 중 인권교육은 일주일에 한 번씩 참여자들을 만났다. 참여한 청소녀들은 13~20세의 청소녀들로, 가출경험이 있고, 지적장애 3급 또는 경계선급이라는 소견이 덧붙여 있었다. 이번 청소녀 캠프 교육은 올 한 해 동안 4회기에 걸쳐 진행됐다. 매 회기 참여자들이 바뀌었다.
인권침해의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 권한강화가 절실한 ‘당사자 인권교육’은 *인권 우선 옹호자에 대한 교육과 함께 매우 중요하다. 빈곤청소년, 성소수자, 노숙인 등 점점 다양한 처지와 정체성을 가진 당사자의 권한강화를 위한 교육의 요구가 많다. 장애인 당사자라 하더라도 뇌병변이나 신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뿐 아니라 정신장애인, 지적장애인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인권교육의 경험은 아직 그 만큼 다양하지 못하다. 물론 당사자의 상황을 참고할 때는 딱 한 가지 조건만 고려해야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여성이든, 고령이든, 혹은 문자해독이 어려운 상태라든지……. 어쨌든 참여자는 복합적인 조건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인권교육은 그들의 상황과 정체성을 두루 살피며 이야기의 시작점을 찾는 눈이 필요하다. 하...그런데 이번 참여자들은? 꽤나 복잡한 실타래인 것은 분명하다.
더불어 날개짓 - 두리번 두리번 길 찾기
참여자들의 경험과 조건을 고려할 때, 여성 청소녀로서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가정과 학교, 친구관계에서 참여자들이 의식하지 못하거나 간과해온 차별(성차별, 나이)을 들여다볼 기회를 마련코자 한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교육은 ‘물과 기름’이었다.
참여자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키고, 인권감수성을 일깨우고자 기대했던 프로그램은 마치 억지로 끼워 맞추는 퍼즐 같이 서걱거렸다. 사회적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가리키는 낱말을 찾고, 이러한 성차별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와 경험을 나누는 첫 번째 프로그램에서 고비는 어려운 낱말이었다.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이라고 할 때의 표현을 참여자들이 찾을 기획이었지만, 어려워 할 것을 고려해 준비해간 우리의 단어가 도리어 어려웠다는 것. 무엇보다 이 활동은 ‘남성적 혹은 여성적으로 쓰이는 단어를 찾는’ 추상에서 시작하는 과정이어서 참여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첫날의 교육이후 프로그램은 급 수정되었다.
수정된 프로그램에서 첫 번째는 학교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학교인권지도 그리기’, 가족의 이야기와 더불어 알바, 가출 등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후나스와 리사’ 상영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마트, 경찰서, PC방, 찜질방, 놀이터 등 마을지도를 돌며 인권을 이야기하는 시간, 용기내지 못했던 순간, 화나고 불편했던 순간에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보는 ‘용기내, 외쳐봐’는 종이인형을 가지고 표현해보기도 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마련된 3차례 교육과정인 셈이다.
더불어 날개짓 - 보일 듯 말듯, 안개인 듯 아닌 듯~
개념상실 오빠들
“친하게 지내던 오빤데, 갑자기 자기 엠피쓰리 없어졌다며 멀쩡하게 있다가 나한테 막 욕하고 때리기 시작했어요. 얼굴도 때리고, 발로 차는 거 있죠. 그래서 도망쳐서 경찰에 신고 했어요.”
“급하게 병원에 가는데, 친오빠가 전화를 해서 빨리 집으로 오라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그냥 당장 오라고만 하는 거예요. 안가면 또 난리 나니까, 집으로 갔어요. 그랬더니 라면 끓이라고... 자기는 TV보고 놀고 있으면. 참 어이가 없어서.”
나쁜 경찰, 좋은 경찰
“경찰이 저한테 화내고 욕도 했어요. 근데 엄마가 오니까 찍소리도 못하는 거 있죠.”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나서 한쪽에 앉아 졸고 있었는데, 경찰이 머리를 때리면서 ‘여기가 어딘데 자냐.’고 소리쳤어요. 조사도 끝나고 졸린데 자면 뭐 어떻다고...”
“배고프면 경찰서에 가서 밥 사달라고 해요. 되게 잘 해줘요. 한데, 경찰서 가면 집으로 잡혀가니까 진짜 잘 안가요.”
“추우면 경찰서 가서 재워 달라고 해요. 경찰 아저씨들이 밥도 줘요.”
집과 가족
“엄마랑 살아요. 이제는 가출해도 별루 신경 안 써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해서…….하하. 근데 신경 안 쓰는 게 좋아요.”
“옛날엔 간섭하는 거 싫었는데, 지금은 쫌 그래요. 가출했다가 들어가도 묻지도 않아요. 니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것 같은데. 믿어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
가출 그리고 일
“찜질방도 가고, 공원에도 가고, PC방도 가요. 하하,,, 모텔도 가요. 비싸도 젤 나아요. 신경 안 쓰고. 전에 찜질방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만지는 거 있죠.”
“전단지 알바도 하고, 주유소도 있어봤어요. **조건하기도 하고... 돈 떼먹는 사람도 있어서 그 사람 차 있는데 까지 쫓아 간 적도 있어요. 치사하지 않아요?”
분노와 억울함이 숨겨야할 마음이 아니라 당연하고 당당히 요구해야할 권리라는 지당한 말씀은 참여자들에게 그리 특별한 얘기가 아닌듯하다. 존중과 즐거운 관계, 여건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상관없이 지속되지 않는 것. 그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스스로 권리를 지키고 요구하는데 힘이 약한 당사자들이 다시 처할 인권침해 상황 앞에 인권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권교육이 모든 걸 해결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만, 인권침해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 앞에 이런 질문은 저절로 되뇌어진다. 그리고는 무력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번 교육에서도 역시 진행자들은 매번 교육을 마칠 때마다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참여자들의 복합적인 상황과 더불어. 하지만 지금의 결론은 그래서 더 필요하다는 것. 인권교육이!
머리를 맞대고
복합적 상황에 처한 당사자들에 대한 인권교육(굳이 이름을 지어보자면)은 그들의 여러 정체성만큼이나 다각도의 시선이 필요하다. 인권교육이 그들을 만나기에 준비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전문적인 이해도 필요하고, 경험도 요구된다. 하지만 계속 미뤄둘 수는 없지 않을까. 미흡하지만 발걸음을 떼는 시작이 있어야 이해도 생기고, 과정도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인권우선옹호자 :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당사자의 인권을 옹호, 지지할 수 있는 위치와 역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불러봤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인권과 관련해서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인권의 우선옹호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조건 : 성관계(매매)에서 쓰이는 말.
덧붙임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타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