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이후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게 의무화되었고, 인권교육이 전문 분야는 아닌 나도 학생인권, 청소년인권 전문가이고 교육 경험이 제법 된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에 학교 인권교육을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낱 님 글에 나온 대로 개중에는 좀 난감한 교육 요청도 많다. 굉장히 시일이 촉박하게 교육 요청이 와서는, 전교생 대상으로 때로는 강당에서 때로는 방송으로 강연을 해달라고 하는 교육 말이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그런 교육은 나가보지는 않았다. 사전에 거절하거나 아니면 잘 설득해서 다른 방식으로 바꾼 덕분에.
지금 소개해드리려고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렇게 다른 방식으로 진행한 교육 이야기다. 화성시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1학년 학생 분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하게 됐는데, 학교 측과 잘 이야기가 되어서 1~2학기 걸쳐서 총 4회, 강사진 6명이 6개 반을 모두 맡기로 했다. 다산인권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4월 30일부터 교육을 나갔다.
교육 방식은 이렇다. 토요일, 총 4교시 중 앞 1, 2교시에는 1, 2, 3반에 두 명씩 짝을 지어 활동가들이 인권교육을 한다. 4, 5, 6반에서는 별도로 준비한 프로그램(인권영화나 교사가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한다. 3, 4교시에는 1, 2, 3반이 인권영화를 보거나 교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4, 5, 6반에 활동가들이 들어가서 인권교육을 진행한다. 그런 식으로 4월에 한번, 5월에 한번 교육을 하고, 2학기에 마찬가지로 두번의 토요일 교육을 한다. 여섯 명이나 되는 활동가들이 참여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교대로 참여하는 방식은 학교에서 수백 명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진행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학생 대상 인권교육, 무엇을?
6명의 인권교육 팀은 회의를 하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런 인권교육에서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지 계속 고민을 나누었다.
예컨대 나는 주로 중고등학생 대상 교육을 가면, 인권이나 청소년 문제에 대해 약간의 관심이라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신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형성하고 뭔가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선동’(?)하거나 아니면 청소년운동으로 조직화하는 성격의 교육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그런 내용으로만 채우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교사들의 협조를 구하는 차원에서도 그렇고, 참여하는 학생들 중에는 그런 데 전혀 관심이 없거나 비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에도 그렇다. 그러면서도 그 학생들이 직접 겪고 있는 ‘학생인권’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면 교육의 생명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학생인권’을 어느 정도 비중으로 넣어야 할지 논의를 거듭했다. 학생인권조례나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학생인권’ 외에도 꼭 포함되어야 할 내용으로 반(反)차별이 꼽혔다. 학교에서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많은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또한 학생들이 이후의 삶에서도 차별의 가해자/피해자/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반차별 교육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학생들 중에 있을 여러 소수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도, 그리고 학생들이 차별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도. 그러나 반차별 교육이 으레 그렇듯이 그게 “다른 사람을 차별하면 안 돼요.”, “우린 모두 소중해요.” 같은 도덕교과서적인 뻔한 메시지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결국 인권교육 프로그램의 얼개는 1) 몸풀기 맘열기 / 인권에 대한 소개 2) 반차별 교육 3) 학생인권/청소년인권 4) 인권이 꽃피는 학교 만들기(인권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실천) 이렇게 4회로 결정됐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1학기 두 번의 교육을 진행했다.
학교의 여러 난관들
여러 가지 머리도 굴려보고 손도 놀려 보며 준비한 인권교육이었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리 순탄치는 못했다. 일단 ‘몸풀기 맘열기’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종이비행기에 ‘듣고 싶은 말’을 적어서 날리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학급에 37~40명의 학생들이 모두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리는 게 쉽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교실이 좁아서 책상을 모두 뒤로 밀었는데도 공간 확보가 별로 안 되었다.
듣자 하니 입학생이 많아져서 원래대로라면 두 학급 정도를 더 만들어야 했을 텐데, 교실 부족으로 한 학급 학생 수를 늘렸기 때문에 교실이 좁다고 했다. 헉…. 교사들이나 우리들이나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상 하긴 하지만, 학생 수가 많으면 교실이라도 좀 그에 걸맞아야 할 텐데, 이에 더해 교실 자체가 좁은 문제까지 우리 앞을 가로막으니, 몸 좀 움직이는 프로그램은 진행하기가 매우 난감했다.
몇몇 교실에서는 장비가 말썽을 일으켰다. 영상이나 프레젠테이션을 이용해서 교육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이나 빔 프로젝터가 꼭 필요했는데, 한 반은 두 번 모두 빔 프로젝터가 안 됐다. 텔레비전의 위치 문제 때문에 창가 줄에 앉은 학생들은 텔레비전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반차별 프로그램 중 프레젠테이션으로 숨은 차별 찾기 퀴즈를 내면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아예 빔 프로젝터가 작동을 안 하는 반에서 진행한 팀은 아주 돌아버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다른 반이었다.) 어떤 활동가들의 경우에는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 문제 때문에 마이크 등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교사들의 무관심이나 관성도 어려움이었다. 우리가 택한 방법의 특성상, 하루의 절반은 그 반의 담임교사 분들이 맡아서 진행을 해주셔야 한다. 교사들의 편의를 고려해서 네 번 중에 2학기 두 번만 교사가 직접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하고, 1학기 두 번은 그냥 『별별이야기』, 『시선1318』 등 인권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소감을 발표하는 식의 프로그램을 하도록 기획했다. 그래서 첫 시간을 하기 전에는, 담당 교사가 미리 영화를 보고 어떤 식으로 학생들과 수업을 꾸려갈지 생각할 수 있도록 3일 전에 영화를 보내드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일에 본 모습은 당황스러웠다.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서 느낀 점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발표하는 모습은 없었고, 독후감 종이 같은 곳에 영화를 본 감상문을 적어서 줄 별로 걷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의 학생들은 쓰기 귀찮아하면서 대충 대충 무난한 한두 문장을 적어서 내는 기색이었다. 영화 내용을 미리 보고 학생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준비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담임교사의 의지에 따라서 좀 달랐을 수도 있지만, 쩝…. 그래서 두 번째부터는 직접 질문지를 만들어서 학교에 전달하고 이 질문지를 나눠달라고 부탁드렸다. 어차피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육적 활동을 하는 것을 담보할 수 없다면 차라리 우리가 만든 질문지로 학생들이 좀 더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들어간 두 개 반 중에서 한 반은 시끄럽긴 했지만 분위기도 활기차고 교육도 잘 진행됐다. 하지만 다른 한 반은 학생들이 어수선하기만 하고 교육 참여에 비협조적인 분위기가 좀 더 강했다. 학생들의 구성이라거나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일단 당장 눈에 띈 차이는 바로 담임 교사였다. 담임 교사가 엄격하고 무섭다는 평을 듣는 반에서는 우리들이 만만하고 순해 보여서 그런지 계속 우리를 무시하거나 슬슬 시험했다. 그 반의 일부 학생들은 자기 그룹끼리만 모여서 무슨 말을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 학생들을 중심으로 교육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일종의 불신 같은 것이, 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대다수 반이 그러면 좀 덜 서운할 텐데, 반에 따라서 분위기 차이가 확 체감이 되니 자꾸 마음 속에서 비교가 되고 더더욱 진이 빠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학생들과 친밀해지지 않고 엄하게 대하는 교사의 반이 수업 분위기가 좋다는 통념 속에서 ‘수업 분위기’라는 말이 얼마나 웃기는 개념인지….
어쨌든!
그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인권교육은 진행되었다. 첫 시간에는 종이비행기에 듣고 싶은 말을 적어서 날리면서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꺼내놓고 이 시간에는 좀 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나누고 눈치 좀 덜 봐도 되는 시간이라고 긴장을 풀어보았다. 학생들은 “니가 짱이야”, “너랑 사귀고 싶어” 같은 말에서부터 “시험 못 봐도 된다.” “공부 못 해도 된다.”, “지각해도 된다.”, “친구랑 외박해도 된다.” 같은 평소의 불만을 드러내는 말까지, 여러 가지 말들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이어서 「있다/없다」.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때의 차이를 ‘있다/없다’로 풀어보면서 일상 속에서 인권에 대해 찾아보는 맛보기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인권 문장 맞추기」와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인권이 어떤 것인지 감을 잡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인권 문장 맞추기는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인권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조건 없는 권리, 그것이 인권” 같은 문장들을 글자에서부터 맞춰나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다소 어렵고 전하려는 내용이 너무 많다는 반성적인 평가도 있었다.
두 번째로 학교에 갔을 때는 차별 문제를 주제로 교육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별별 가족 그리기」로 자기가 생각하는 살고 싶은 가족을 그리고 ‘정상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 등을 깨는 활동을 했다. 잘 된 반도 있었다고 했지만 어떤 반에서는 그냥 “세상엔 여러 다양한 가족이 있어요. 이런 가족을 차별해선 안 돼요.” 같은 뻔한 메시지만 전달한 거 같아서 공허했고 학생들이 그림 그리기에만 집중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리고 「숨은 차별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진이나 장면들 속에서 다양한 차별을 퀴즈 맞추듯이 찾아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육교는 누가 다니는 길일까? 커플요금제 속에는 어떤 차별이 있을까? 선생님에게 인사하는 ‘착한 아이’의 모습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 걸까? 어떤 학생들은 동성 커플이 키스를 하는 사진에서는 “꺄”, “더러워” 호들갑을 떨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어떤 학생들은 “나이가 어리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런 학생들과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설명하면서 교육을 진행하다보니, 이 차별 하나하나가 모두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참 시간이 짧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번의 인권교육 중에 두 번을 마무리했고, 앞으로 2학기 두 번이 남아 있다. 학생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그냥 학생인권/청소년인권 이야기를 앞부분에 할 걸 그랬나 싶었다. 1학기 교육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교실 환경과 강사들의 특성(목소리 크기라거나!) 등에 맞춰서 좀 더 세심하게 짠 인권교육을 2학기에는 준비하기로 다짐했다. 학생들의 특성이라거나 반 분위기 등에 대해서 교사들이 좀 더 협조적으로 세심하게 정보를 주면 훨씬 교육을 진행하기 편할 거라는 투덜거림도 있었다.
올해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덕에 학교로 인권교육이 들어가는 첫 해이다. 나도 그 전에 학교로 교육을 간 적은 많았지만 보통 특정 동아리나 특정 학급, 관심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전교생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인권교육을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초의 ‘본격’ 중학생 인권교육인 것이다. 때문에 아직 서툴고 잘 감이 안 잡히는 부분들, 당혹스러운 순간들도 많다. 학교에서 적절하고 효과적인 인권교육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다듬기도 해야 하고 교사들의 이해와 협조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는 교사들이 직접 인권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도 할 것이고…. 하지만 2학기 때까지 해서 이 인권교육을 모두 마치고 나면, 우리가 만나는 학생들이 이 인권교육에서 보통 학교 생활과는 다른 새로운 생각과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본다. 그러니까 우리는 또 오밀조밀 미어터지는 38명 39명짜리 교실로, 인권을 들고서 들어가는 것이다.
덧붙임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