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달기
혹시 교육받을 권리, 집회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 사상양심의 자유와 같은 목록을 기대했나? 물론,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권리를 세계인권선언, 아동권리협약의 조항 그대로 읽어가야 한다면, 그야말로 두 번은 견디기 힘든 ‘재미는 없는 교육’이 되겠지! 참여자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권리 항목을 펼쳐놓는 방식으로 ‘권리 선물하기’는 애용되는 프로그램이다.
장애인식교육의 강사로 나서게 될 강사를 위한 인권교육에서 만나는 참여자들은 대부분 장애아동을 자녀 두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 있다. 그들에게 권리를 선물하고 싶은 사람을 물었다.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권리를 찾아보도록 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권리 그림을 모둠별로 나눠주고 권리를 선물로 주고 싶은 구체적인 대상을 찾아보도록 했다. 모둠별로 권리그림을 3-4개씩 나눠주고 각각의 권리를 주고 싶은 대상에 대해 이야기한 후에, ‘대상과 주고 싶은 이유’를 적어보도록 한 것.
더불어 날갯짓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
(어린이집 교사가)아이가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2시 30분에 귀가할 것을 강요하셨어요. 그런데 그 근거가 아이가 낮잠을 잘 것을 요구했을 때 옷을 벗는 행위를 했다며,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원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렇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서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다른 것들은 교육과 훈련을 강조하면서 유독 2시 30분 이후에 어린이집에 남아있는 것을 꺼려하시는 것은, 아이를 돌보기 힘든 상황을 돌려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한데 저는 어떤 반론도 할 수 없었어요. 마음으로는 어린이집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 결국 올리지 못했습니다. 혹시나 우리아이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까 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그때 하지 못했어요.
“맞아! 맞아! 나도 그런 적 있어”
“그래! 애 보기 힘들다는 말은 저렇게 애 위하는 듯이 말을 하면, 참 말문이 막히지.”
“에휴~ 정말 속상했겠다.”
상처받은 자신에게 권리를 선물하는 것이 생각처럼 ‘아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냥 갖고 싶은 걸 나눠 갖는 선물이 아니라 갖지 못했던, 뭔가 ‘문제’적 상황을 떠올리고,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열지 않으면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길 풀어 놓게 되면 이내 지지와 응원에 힘은 두 배, 열배가 된다. 상처나누기는 밴드 열 개쯤 곱한 것이 돼 돌아온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 펼치는 당사자가 권리를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배울 수 있다
이 권리는 노인에게 주고 싶다. 노인의 평생교육이 있어야 하는데, 새로운 지식 정보 알려주고 치매예방을 위한, 외롭지 않게 국가적 차원의 지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인복지관이 있지만 아주오래 대기해야 하고, 또 돈이 없으면 이용할 수도 없다. 그리고 미인가 시설에서의 장애인들도 모두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의견을 존중받아야 한다
아이들의 의견을 과연 존중하고 있는가? 가정 안에서 조차 아이의 의견이 소중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게 많다. 특히 형제들이 장애형제의 의견을 잘 들어 주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수용될 순 없어서도 열린 마음을 필요하지 않을까..생각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같다
돈이 없어서 아기 기저귀 훔친 사람 재판을 통해 실형 받기도 했다. (요즘은 생계형 범죄는 봐주지만), 그 반대로 삼성회장, 전직 대통령은 더 큰 범죄를 했지만 그들이 가졌다는 이유로 면죄부 주는 사회다. 이 카드는 삼성가와 전직 대통령에게 주고 싶다.
이 만큼은 꼭 필요하다
MB에게 장애인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게끔 해달라는 의미에서 대통령에게 주고 싶다.
권리가 꼭 필요해 보이는 다른 사람에게, 때로는 인권을 잘 모를 것 같은 어떤 사람에게 선물되기도 한다. 주로 ‘이것도 권리다’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의미로. 주로 권리를 꼭 알려줘야 하는 어떤 사람의 목록으로 재벌, 대통령, 판·검사, 경찰 등등이 거론되는 신기한(?!) 공통점도 있다. 인권교육을 처음 참여하는 사람들도 판·검사, 경찰, 대통령 등이 인권을 제일 먼저 교육받아야할 ‘문제적’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런데 과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처음 인권교육을 시작했던 영역도 경찰, 검찰, 교정시설 공무원 등등이었다. 참여자들이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권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주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에게 주던, 선물한 권리는 참여자의 경험에 녹아 있는 살아 있는 ‘권리 이야기’이다. 그래서 알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몸소 경험한, ‘권리의 실체’. 그래서 누가 필요하고, 누가 권리를 빼앗는지 말이다.
머리를 맞대며
참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과 지지를 보내다 보면, 인권교육이 무슨 치유 프로그램이냐는 얘길 하는 사람도 있다. 인권교육은 ‘인권’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힘을 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힘을 돋우는 그 속에 치유가 있다면 ‘그렇다’고 할 밖에.
덧붙임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