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오전 10시, 은평자활센터에서 자활하시는 분들과 함께 인권교육 일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강의였다. 대부분 40~50대 여성이었고 10여명 가량이 50대 남성이었다. 1년 이상 자활근로를 하신 분들로 간병인보조, 보육 보조 및 청소보조 등의 활동을 한다. 4일간의 교육 중 인권교육은 딱 하루 2시간만 잡힌 일정이었다.
사람 수가 100명가량 되다 보니 활동형 교육을 할 수는 없었다. 미리 준비해간 파워포인트 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권적인 표현인지, 아닌지를 OX게임으로 알아보기도 했으며, 인권카드에서 자신의 일상에서 겪은 보장받아야 할 권리는 무엇인지를 줄별로 1명이 발표하는 방식으로 하였다.
강의가 끝을 향해 갈 무렵 우리에게 필요한 권리가 무엇인지를 줄별로 발표를 돌아가면서 하는 데 한 남성이 말씀하셨다.
“ 앞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 데 현실과 많이 다른 거 같다. 실제 우리가 쉴 권리를 회사에 얘기한다고 회사가 들어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러면 ‘너 관둬라.’라고 말한다. 우리가 알아봐야 쓸데가 없다. 너무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 같아 답답하다.”
순간 좌중은 아주 조용해졌다.
“맞습니다. 어떠한 내용이 인권이라고, 우리의 권리라는 걸 안다고 해서 그게 바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거기서 어떤 내용이 인권임을 아는 건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자신의 인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권을 보장하라고 사회에 요구해야 합니다. 물론 요구하고 싸운다고 바로 권리가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긴 싸움을 거쳐 인권을 보장받은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행동에 나설 것인가 아닌가는 순전히 개인이 판단할 몫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싸울 거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말하면서도 나 스스로도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인권이 마치 좋은 얘기만 골라서 하는 공자님 말에 그친다면 인권교육은 현실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권이 공자님 말씀-비현실적인 것-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인권현실이 낮다는 것 아닌가.
또한 가난은 운명이러니 하고 사는 것과 보장받지 못한 권리임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큰 차이인가. 오히려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것이 빼앗긴 권리라는 것을 아는 것은 더 큰 박탈감을 준다는 사실은 역설처럼 느껴졌다.
앞줄에 계신 적극적인 여성이 나의 이야기를 이어 질문했다.
“ 우리는 어디에 가서 우리의 요구를 얘기해야 하고, 누구와 그러한 요구를 함께 만들어 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
“ 제가 아는 한 간병인 노조나 활동 단체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거기서 얼마큼 싸움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
이렇게 나온 얘기를 미리 준비해간 ‘자활근로자의 노동권 보장’에 대한 강의로 주제를 이어갔다. 지금 자활 근로자들이 확보해야 할 권리는 노동자성 인정인데 그걸 확보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끝으로 인권은 현실에서 어떻게 먹고사느냐와 관련된 문제이며 우리 모두의 과제라는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이번 강의를 하며 ‘인권’이란 말이 편치 않게 들리는 이 시대를 ‘인권’이 편하게 다가오는 시대로 가기 위해 수많은 골과 산이 있음을 새삼 느꼈다. 또한 그 길은 반드시 살아 숨쉬는 민중들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