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독일에서 세월호 피켓을 들고 서 있었을 때 그곳 사람들이 보인 반응들이 기억납니다. 한국에서 배가 바다에 침몰하여 300명 이상이 숨지는 사고가 났고, 그 이후 구조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왜 사고가 났는지 알고 싶다는데 국가는 오히려 이들을 탄압하고 있다. 이 설명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걸 보면서 처음엔 외국어로 설명하는 것에서 초래된 어려움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시 돌이켜보니 그 이유가 아니더라고요. 그 나라 사람들에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인데, 이들의 상식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들으니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진짜 그러냐고 재차 확인하는 거였더라고요. ‘구조받을 권리’가 당연한 나라의 사람들에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이 보상금이나 바라는 이들로 매도된다는 게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던 거죠. 사회에 따라 이렇게 다른 공감하는 힘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새삼스레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들’ 회원들과 함께한 4.16 인권선언 풀뿌리 토론
지난 10월에 열린 풀뿌리토론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회원모임을 겸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작년 <'나 괜찮은 시민인 줄 알았는데...' - 재난사고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란 글을 공동작성한 ‘들’의 소모임 ‘괜찮은 줄...’ 팀 멤버와 다른 활동회원들, 그리고 상임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풀뿌리토론 매뉴얼에 제시된 세 가지 질문들을 토대로 진행했습니다.
●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때 나의 느낌/감정은?
● 세월호 참사 발생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이건 쫌 아니지 않나 싶었던 장면/현상/문제는?
● 위에서 말한 문제들을 바꾸기 위해서 요구해야 할 권리는?
“이건 쫌 아니지 않나 싶었던” 질문에 대해 이 사회가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미안하다 아이들아”라는 구호가 “우리 세대(기성세대)가 잘못해서 이 꼴이 됐다”며 자기들이 나라를 바꾸겠다는 얘기로 이어질 때 정작 아동·청소년은 여전히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들, 그리고 이번 사건의 경우 안산 지역 학생들이 피해자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상황 속에 비학생 희생자들은 정당한 관심과 공감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슬픔과 상실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이들아 미안하다’를 넘어서지 못하는 건 우리 사회 감수성의 빈곤함을 반증하는 것 아니겠냐는 자조 섞인 푸념도 나왔고요.
세월호 사고 당시 배 안의 학생들에게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안타까워했던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말 잘 듣는(가만히 있는) 모범생 vs (어른 말 안 듣는) 문제아’라는 문제적 도식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에 분노하면서도 “착한 애들은 다 죽고 담배 피러 나온 날라리 애들만 살았다”는 식으로 회자되는 것 속에 반영된, 이 사회가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눴습니다.
이렇게 청소년이 우리 사회에서 호출되는 방식이 동등한 주체로서가 아니라 어른들한테 필요할 때만 근거로 동원된다는 점은 ‘단원고 교실 존치’ 문제를 둘러싼 담론에서도 발견된다고 짚어준 분도 있었습니다. 유가족들을 향해 ‘자식 팔아’ 운동한다고 비판하는 보수세력들이 단원고 2학년 교실을 없애자고 말할 때는 정작 “새로 입학할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냐”라는 식으로 ‘학생’을 끌어온다는 거죠. 청소년인권의 흐름이 한국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가 이래서 어려운 거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서 더 나이로 정당화되는 차별에 맞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순수하지 않아도 될 권리, 슬픔의 주인이 될 권리
청소년인권의 문제의식 속에 우리에게 필요한 권리로 먼저 언급된 것은 ‘학생답지 않아도 될 권리’, ‘순수하지 않아도 될 권리’였습니다. “무고한 청소년들이 죽었다”는 표현이나 “체제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데 죽었다”는 표현은 ‘미숙한 청소년’이란 인식과 동전의 양면처럼 작동하면서 결과적으로 청소년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순수하지 않아도 될 권리는 ‘피해자답지 않아도 될 권리’와도 연결되어 얘기됐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하면 도리어 ‘꽃뱀’ 소리를 듣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피해자가 무기력하고 불쌍한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그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지요. ‘피해자다움’의 프레임은 기득권 세력이 잘 활용하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이는 “유가족이면 좀 가만히 있으라”는 부당한 요구나 “보상금을 노린 떼쟁이”라는 식의 낙인이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투쟁을 폄훼하는 이들을 향해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 투쟁 당시 김지태 대추리 이장이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보상금을 노리고 이러고 있다고요?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당신들은 우리가 이 땅에 흘린 땀과 시간의 무게를 정말로 계산할 수 있겠소?” 표현의 자유라고 했을 때 그 자유가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도 사회적 약자가 ‘피해자다움’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자기주장을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권리는 필요할 것입니다.
피해자답지 않아도 될 권리를 말하는 중에 ‘나의 가난함(비참함)을 증명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연결되어 나왔습니다. 유가족들이 사고 이후 긴급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통장 잔고에 얼마가 있는지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진도를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그 와중에 사망 신고부터 시작해서 온갖 서류를 떼러 다닐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는데, 국가는 그 서류 미비를 이유로 제때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언급된 권리였습니다.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건 ‘보상금’이 아니라 ‘고통을 당한 후 먹고 사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권리’이고, 이 권리는 비단 유가족뿐만 아니라 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사회경제적 존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당장 생계 때문에 슬픔에 젖어있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한편으론 얼마나 ‘슬픈지(비참한지)’를 증명하기를 요구하는 부당한 국가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지겹다, 아직도 그 얘기냐”는 식으로 슬픔에 시간을 정하고 그만큼만 슬퍼하라고 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서 ‘슬픔의 주인이 될 권리’도 이야기되었습니다. 누구는 내 일처럼 계속 눈물을 흘리는 데 반해 나는 슬픈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눈물이 막 나는 건 아닐 때 내가 이상한 존재인 것인지, 분명 아픔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도 “슬프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청소년 유가족을 어떻게 볼 것인지, 혹은 세월호 운동에서 발견되는 청소년들에 대한 보호주의를 지적했을 때 “그럼 세월호 운동 하지 말라는 거야?” 식으로 반응이 나올 때와 같은 상황과 반응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토론을 했습니다. 각자 느끼는 슬픔의 깊이와 맥락이 다를 수 있다는 점, 가령 “세월호 얘기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는 사람 중에는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녀도 무력감에 파묻히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렇게 말한 건 아니었는지를 인정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각자의 슬픔을 들여다보며 그 슬픔 너머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공감을 조직할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내 자식이 죽었는데” 식의 발언이 가족주의(보호주의)를 고민하는 이들에겐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이가 자신의 상처와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다면 슬픔을 표현할 다른 방식의 언어는 어떻게 새롭게 구성될 수 있을까?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그 존재의 존엄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의 인권감수성은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 속에서 ‘공감을 조직할 권리’가 등장했습니다.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그 공감을 조직할 권리라고 했을 때의 의미는 모이고 말할 권리로 시작해서 그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요청할 권리, 말할 수 있는 언어를 획득할 권리, 타자를 만날 권리 등까지를 포함합니다. 내 말을 들어주길 요청할 수 있는 만큼 나도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감수성이 깔린 사회가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존엄은 내가 상대의 존엄을 인정해줄 의무와 동시에 나도 인간으로 대우받기를 기대할 권리의 쌍 속에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고, 이 사회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변화’란 단어 자체는 가진 자들도 ‘국가 개조’ 운운할 때처럼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니 더욱더 우리가 바라는 변화의 내용을 고민하고 표현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4.16 인권선언을 만들고 선언하는 과정이 우리는 이 사회가 어떻게 변하길 바라는 것인지 인권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벼리고 행동의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임
날맹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