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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문제적 인간’이 찾아왔다

긴장과 생동감을 불어넣는 가해자 소환 교육

인권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인권침해 사건이나 가상의 사건을 제시하고 참여자들로 하여금 인권의 기준으로 문제점을 분석해보도록 하는 과정은 인권감수성을 기르는 데 효과적인 한 방법이다. 그런데 사례를 신문기사나 문서 형태로 제시하는 건 뭔가 좀 밋밋하다. 사례를 좀더 생동감있게 제시할 방법은 없을까? 오늘 만나볼 인권교육은 차별사건에서 가해자 위치에 서 있는 ‘문제적 인간’을 직접 교육공간으로 소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교육이다.

날개 달기 - ‘전문가의 망토’를 입히다

먼저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전문가’의 역할을 부여한다. 참여자들을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은 인권단체 활동가 또는 인권침해구제기구에 종사하는 조사관이라고 가정한 뒤, 이후 제시될 사건을 해결해야 할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교육에서 다룰 인권침해 사건의 ‘개요’를 제시하고,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곧이어 소환할 테니 그 사람에게 던질 질문 목록을 뽑아보라고 요청한다.

장애인 차별을 주제로 한 교육(장애인권교육)에서도, 차별적 부당해고를 주제로 한 교육(노동인권감수성교육)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사례는 아래와 같다. 당연히 교육의 주제에 따라 제시되는 사례는 달리 구성되어야 한다.

2005년, 보청기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안 아무개 교수는 교수평가 점수가 낮다는 이유로 조교수(학과장)에서 강의전담교원(학칙에 없는 직책)으로 계약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수용한 바 있다. 2년 뒤에도 학교 측이 강의전담교원으로 재계약할 것을 요구하자 안 교수는 이를 거부했다. 이후 안 교수는 장애 차별에 기반을 둔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소송을 제기했다.

󰁾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1. 대학 임직원 모두 중국연수를 가는데 안 교수만 제외시킴
2. 학장이 참여하는 회의 참여 배제

사례를 간략히 소개한 다음, 곧이어 ‘학장’을 소환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소환에 앞서 참여자들로 하여금 모둠별로 어떤 질문을 던져야 이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지를 논의해 보도록 요청한다. 또 가해자가 인권침해를 부인할 수 있는 만큼, 어떻게 가해자와의 대화를 이끌어가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시인하게끔 할 수 있을지도 궁리해보라고 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모둠별 토론 과정은 생략하고 참여자들에게 잠깐 각자 생각할 시간만 준 뒤, 곧장 가해자를 소환해도 좋다.

더불어 날갯짓 1 - ‘문제적 인간’을 불러오다

질문이 어느 정도 뽑아졌다 싶으면, ‘문제적 인간’인 학장을 교육장 안으로 소환한다. 교육 진행자가 가해자의 역할을 맡아도 좋고 보조 진행자가 역할을 맡아 등장해도 좋다. ‘문제적 인간’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는 문을 열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든지, 모자를 쓴다든지, 가슴에 이름표를 단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연극 속으로 들어가는 절차를 밟아주는 것이 참여자들로 하여금 극의 시작과 끝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게끔 도울 수 있다.

조사관 또는 인권활동가들에게 불려나온 '문제적 인간들'

▲ 조사관 또는 인권활동가들에게 불려나온 '문제적 인간들'


가해자인 학장이 거만한 태도로 등장하자, 교육장 안에는 일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내가 한 시간에 얼마를 버는 사람인 줄 알아요? 문제 같지도 않은 일로 중요한 사람 오라 가라 하지 말고 빨리 끝냅시다.” 이렇게 참여자들을 자극하면 가해자의 문제점을 파헤칠 수 있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때 학장 역할을 맡은 진행자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답을 하되, 핵심적인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 싶으면 질문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발언으로 ‘조사’의 열기와 밀도를 높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 안 교수의 교수 평가 점수가 낮게 나왔다고 하는데, 평가를 매기는 기준은 무엇인가요?(참여자)
= 아니 그 사람이 학생들로부터 받는 강의평가 점수는 높게 나왔더라고. 근데 인화력이 부족해요. 학교도 하나의 조직사회인데……. 동료 교수들이 그 교수를 다 불편해 해. (진행자)
- 그럼 학장님도 인화력을 기준으로 평가 점수를 낮게 주신 건가요? 인화력이 합리적 평가 기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동료 교수들이 불편하게 여겨서 중국 연수에 데려가지 않으신 건가요? 모든 교수가 다 가는 연수에 왜 안 교수만 가지 못한 건가요?(참여자)
= 아니 뭘 안 데려갔다고 그래요? 내가 부러 기획실장까지 보내서 갈 생각이 있냐고 확인까지 해봤는데?(학장)
- 다른 교수들에게도 그렇게 따로 확인하셨나요?
= 아니지. 안 교수야 워낙 자기가 어울리기 싫어하고 동료 교수들도 불편해하니까 안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부러 확인해 본 거지.
- 그렇게 따로 확인하신 게 안 교수는 안 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고는 생각지 않으세요?

- 안 교수는 회의 참여를 배제당했다고 주장하는데, 대개 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어떻게 교수들에게 알리시나요?(참여자)
= 아니, 우리가 문을 걸어 잠그고 못 들어오게 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들어올 생각이 있으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데, 이 양반이 연구실에서 음악소리만 크게 틀어놓고 안 들어오지 않겠어요? 그래서 조교를 보내 음악소리를 줄여달라고 부탁했더니 이 양반이 외려 음량을 더 키우는 거야. 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요?(학장)
- 그러니까 회의에 들어오라고 얘기한 게 아니라, 항의만 하신 거네요? 그 분이 왜 음악소리를 키워놓았다고 생각하세요? 혹시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안 교수가 “내가 여기 있으니 불러 달라”는 신호를 보낸 건 아니었을까요?
= 아니 회의에 안 들어오면서 음악 소리를 키워놓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됩니까?
-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도 차별이라는 걸 알고 계십니까?
= 정당한 편의가 대체 뭡니까? 아니, 우리가 보청기라도 사줘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적극적․직접적으로 기회를 박탈하고 배제하는 것만이 인권침해(차별)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그 존재와 함께 한 사회를 이루고 있음을 환대하지 않는 분위기도 당사자에게는 배제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 당사자의 기질과 주변인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발견되는 것이다. 인권침해를 들여다보는 현미경은 이렇게 조금씩 더 세밀해지고 예민해진다.

더불어 날갯짓 2 - 인권침해로 판단한 이유를 조목조목

질문과 대답을 통해 어느 정도 사건의 본질이 파헤쳐졌다고 생각하면 가해자인 학장은 퇴장하면 된다. 이제는 지금까지 나온 의견들을 바탕으로 이 사건이 인권침해라고 판단하는 이유를 모둠 안에서 정리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조목조목 정리해보고, 가해자가 취해야 할 조치를 함께 정리해 보는 것이다.

참여자들이 문제점과 시정 조치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 참여자들이 문제점과 시정 조치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부당한 평가 기준에 따라 부당한 계약을 요구했던 만큼 안 교수를 복직시켜야 한다, 교수 평가 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안 교수가 학교에서 업무를 이행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어야 한다, 학교 구성원들에게 인권교육이 필요하다 등 필요한 조치들이 제시돼 나왔다.

고개를 맞대어 - ‘문제적 인간’을 생동감있게 창조하려면…

인권침해 사건에서 가해자 위치에 선 ‘문제적 인간’을 교육공간 안으로 초대하는 일은 이처럼 참여자들의 인권감수성을 예리하게 가다듬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문제적 인간’과 함께 구체적 현실이 생동감 넘치게 교육공간 안으로 초대된다. 인권침해를 낳는 편견과 무지도, 침해를 당한 당사자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까지도 직접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실제적 사건으로 인권침해 사례를 접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참여자들에게 입힌 ‘전문가의 망토’는 각자가 가진 지식과 감수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사건을 대하도록 돕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참여자들은 어떤 논리에 대응하기 어려웠는지, 자칫 놓치기 쉬운 진실은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교육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사례와 준비된 진행자가 필요하다. 진행자는 사건을 꿰뚫고 있어야 하고 적절한 언사와 실감나는 연기로 참여자들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예상 밖의 질문에 대해서도 적절히 응답할 수 있는 임기응변도 가능해야 한다. 섣부르게 시도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임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