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형사사법은 체포, 수사, 재판, 구금 과정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절차들을 의미한다. 신체를 구속하는데 있어서 비교적 명료하게 규정된 위 과정들은 일면 인권보호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와 개인,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라는 결코 대등할 수 없는 권력관계 속에서 ‘구체적 인간’은 형사사법절차에서 결코 보호의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짧은 경험에서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5월 8일 제2회 전국인권활동가준비모임이 준비한 ‘형사사법절차와 차별’은 소수자가 경험하는 형사사법 절차의 실태를 환기시키는 자리였다. 인권하루소식(2004년 5월 8일자 참조)을 통해 형사사법 절차에서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가 경험하는 차별적인 법과 관행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했다면 이번 글에서는 여성의 시각에서 형사사법절차가 얼마나 차별적인지 살펴보겠다.
남성중심의 수사기관, 여성 인격권 침해 발생
이날 포럼에서 주 발제를 맡은 이상희 변호사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틀 속에 박힌 수사기관이 여성 피의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여성비하 발언을 하거나 여성의 생리적 특성을 무시하면서 여성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많고, 수사와 무관하게 성희롱?강제추행 등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실례로 1996년 한총련 연세대 사건에서 경찰은 (연행 및 조사과정에서) 여학생에게 성적 욕설,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언어폭력, 성희롱 등을 광범위하게 행사했다. 당시 피해여학생들과 여성인권단체들은 경찰 관련자를 고발했지만 무혐의 처리되었다. 여성에게 성을 매개로 한 폭력은 경찰의 입장에서는 여성 피의자를 쉽게 굴복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 외 보고되는 사례로는 알몸수색이 있다. 국가인권위 조사보고에 따르면 알몸수색을 경험한 309명 중 여성피의자는 54명이었고 이중 6명(11.1%)이 알몸수색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주로 여자경찰관이 수색하고, 남자 경찰관이 배석한 상태에서 알몸수색이 이뤄졌으며, 생리중인 여성에 대해 정밀검사를 한다면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도록 요구하거나 임신 2개월의 임산부에 대해서 정밀검사를 이유로 성기 및 항문검사를 한 일도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조사대상 여성 피의자 122명 중 유치장에 여성 경찰관이 배석되지 않아 64.4%가 남자 수사관에게 생리대 지급을 요청할 수밖에 없어서 불편하다고 응답하였고 27.4%는 생리대를 지급 받지 못해 유치장에 구금된 다른 피의자에게 빌렸다고 응답했다. 남성피의자 중심적인 처우가 여성 피의자에게는 또 다른 차별로 다가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성폭력 여성피해자 2중의 고통에 시달려
성폭력 피해 여성을 조사하면서 경찰?검찰은 남성중심의 사고와 제도로 인해 여성들에게 2차 피해를 주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당하는데 원인 중의 하나는 피해자의 2차 피해자화를 초래하는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에 있다. 이상희 변호사는 “피해자 문제는 모든 범죄의 유형에서 동일하게 발생할 수 있으나 특히 성폭력 피해자와 관련하여 말도 안되는 전통사회 순결관 때문에 다른 사건과 달리 피해자가 오히려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아야 하고, 어느 범죄에서보다 강하게 피해자 유발론이 제기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의 2차 피해자화를 초래하는 요인들의 유형들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배려하지 못하는 경찰관의 질문 △피해발생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투의 경찰관, 검사의 태도 △증거물로 압수된 물건의 환부, 가환부의 지연, 검사의 태도 △수사결과와 진행상황에 대한 정보의 결핍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2차 피해자화를 초래하는 요인들의 유형들로는 △법적 출석을 기다리면서 한없이 절차가 지연되거나 공소기각, 무죄가 선고되어 봉착하는 당혹감과 절망감 △법정에 출석하려고 할 때 봉착하는 교통상의 불편과 양육아동에 대한 우려 △법정 출석, 증언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수입감소 △공개법정에서의 증언에 대한 걱정, 피고인 변호인으로부터의 적대적인 질문과 피고인 가족, 친구로부터의 위협 등이 존재한다. (심희기, 수사재판과정에서의 2차 피해자와의 최소화 방안)
형사사법 절차에 ‘여성’이라는 구체적 인간을 대입해본 결과 ‘차별’ 이라는 커다란 구멍이 있음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별을 줄이고 예방할 수 있는 방식은 그녀들의 경험에 기초해 세밀한 인권기준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세밀화 작업이 다양한 조건에 놓여있는 여성은 물론 장애인, 동성애자, 아동 등 소수자의 참여로 풍성해질 것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