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열심히 모여 궁리하고, 토론하지만 세상엔 잘 드러나지 못하던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 모임(길내는모임)'이 오랜만에 공개적인 활동을 진행했다. 지난 8월 18일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운동, 동료되기를 시작하자>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길내는모임 노동포럼팀이 주최한 것이다. 토론회가 시작되고 참석한 노동조합운동부터 사회운동 활동가들은 질문했다. ‘우린 지금까지 동료가 아니었던가요?’ 충분히 질문받을 줄 알면서도 왜 길내는모임 노동포럼팀은 동료되기를 시작하자는 제안을 담은 토론회를 주최했을까.
새삼스럽게 동료되기?
길내는모임이 작년부터 변혁적인 사회운동을 (재)구성 해보자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했지만 어떻게 하면 ‘변혁’적인 ‘사회운동’이 될 수 있는지 여전히 막막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노동이라는 키워드 즉, 일의 세계를 재구성하지 않고 변혁은 불가능하다는 감각에서 길내는모임 노동팀은 출발했다. 그렇게 지난 2월 노동자 세력화를 위한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운동의 과제를 모색해보자는 간담회를 진행했고, 체제 변혁을 위해 노동조합의 존재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이 다 다 질문받고 있는 상황에 놓여있음을 함께 확인했다. 이에 8월 토론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들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질문받고 있는지를 차근히 집었다. 먼저 노동조합운동의 외적인 조건으로 기업의 노동자 분할전략과 이에 맞물려 있는 작은사업장 중심의 산업구조,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는 과정을 주목했다. 또한 노동조합운동 내적으로는 기업의 노동자 분할전략이 고착화 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조합원 간의 배타성과 갈등이 드러나고 있으며, 기존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평가를 건너뛴 채 새로운 노동조합이나 노동조합이 아닌 형태의 결사체에서 대안을 찾지만 한계에 봉착하는 장면을 주목했다.
길내는모임이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운동이 더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유는 바로 그 한계에서 출발한다. 노동조합에 함께 하기 어려운 노동자는 누구일까? 청년,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이 기업의 노동자 분할전략으로 세력화되지 못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집단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노동조합을 구성하는 인적 구성이 과거에는 대기업, 남성, 제조업 중심이었다면 노동조합 조직화의 방향성에 맞게 변화될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다. 페미니즘이 노동조합의 주요 실천 원리가 되고, 차별적 공정 담론을 넘어선 연대의 경험을 노동조합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길내는 모임은 노동조합운동이 고용과 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지지 않도록, 자본의 전략에 맞서는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 사회운동 단체들의 고민과 노동조합이 더 많은 접점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다. 동료되기라는 요청은 이 고민을 각자의 단체, 조합에서 알아서 하기보다 함께 나누는 관계가 되어주기를 요청이었다.
더 잘 만나기 위해
이번 토론회에서 한 참가자는 뻔하지 않은 토론회라 좋았다는 소감을 나누어주기도 했는데, 이는 주최 측의 의도대로 토론이 펼쳐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소감이었을 것이다. 토론회는 다양한 의견과 질문이 나누어졌다. 그중 나에게 개인적으로 눈에 띄었던 토론 거리를 정리해보면 먼저, 구체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훨씬 더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는 제기였다. 민주노총과 같은 노동조합은 100만 명이 넘게 가입된 대중조직으로 거대하게만 보이지만 실제 사업장, 조합마다 천차만별이다. 사회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이 만나야 한다는 제안을 큰 틀에서 하기보다는 어떤 노동조합 활동가와 어떻게 만나고 싶은지까지 함께 이야기될 때 잘 만날 수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제기는 사회운동이 노동조합운동과 체제 변혁을 도모하는 관계가 되려면 정치적 전망에 대한 고민을 빼놓고 만나자는 이야기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정치운동과의 만남의 부재, 사회운동의 자력화를 위한 고민, 87년 이후 민주노조 운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까지 다양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제기였다. 이외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시도해왔던 과정과 좌절을 공유하고, 체제 변혁을 공유하는 관계는 어떻게 가능할지까지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가 오갔다. 긴 시간 이어진 토론회는 후속 과제를 정리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다만, 함께 잘 만나기 위해서라도 노동조합과 사회운동 각자 자기 과제를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최소한 확인한 시간이었다.
토론이 끝나고 난 뒤
마치 토론회 참여자17쯤이었던 것처럼 덤덤하게 토론회 참여 후기를 정리했지만 실제 나의 소감은 매우 다르다. 왜냐하면, 이 토론회의 사회가 나였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맡은 토론회 사회자 역할이 부담스러웠음은 물론 주제가 쉽지 않았던 터라 전날부터 잠이 오지 않았었다. 여기에 플로어 토론이 시작되고 예리한 질문들이 오가기 시작할 땐 등에서 식은땀이 절로 났지만 (사회자의 시간 관리 실패로) 3시간이 넘도록 토론회는 진행되었다. 겨우 마치고 나서는 정말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나갔지만, 여러모로 집으로 바로 향할 수 없었다. 토론회에 나온 질문들을 다시 수습하여 다음 길내는 모임 노동포럼팀은 어떻게 다시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인지도 고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토론회를 마치고도 귀가하지 못하고 서성이던 참여자들 때문이었다.
동료가 되어보자는 제안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질문하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밤 10시 반이 넘은 시간임에도 주춤거리며 토론장을 벗어나지 못하더니 뒤풀이까지 함께했다. 나는 왠지 못다 한 이야기가 꽃을 피우는 바로 그 자리에서 길내는모임이 이어가야 할 후속 과제를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결판이 지어질 일이었다면 왜들 그렇게 서성이기만 했겠는가. 토론회 이후 평가작업도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후속과제가 무엇일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 서성거리던 발걸음들 속에서 길내는모임의 제안이 맴돌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길내는모임 노동포럼팀의 과제는 이 맴도는 마음을 구체화 시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를 위해 다시 논의를 이어가겠지만 너무 긴 시간 수면 아래 머물지 않도록 애쓰며 다시 길내는모임 노동포럼팀의 활동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다짐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