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주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 주제 중 ‘100만 원과 열흘의 휴가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가 있었다. 사람들은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단순히 쉴 시간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쉼이 될 수 있는 물적 조건도 마련되어야 하는데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것은 진정한 쉼이 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다양한 선택지 중 하루종일 뒹굴거림을 선택하는 것과 제한된 소득 범위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집에만 있는 것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마저 우습게 정부는 단지 ‘내수 진작’을 위해 5월 6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정말 휴식이 필요한 우리....
예전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가 있었다. 여행업계에서 만든 이 광고는 인기를 얻었지만 참 씁쓸한 현실을 담기도 했다. 참 열심히 일해야 하는 사회이다. 노동자들의 존엄한 삶을 위한 노력 끝에 2011년부터 5인 이상 사업장까지 주 40시간 노동이 법제화되었지만 노동시간은 아직도 OECD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 노동자의 총 노동시간은 2,285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았고, 가장 적었던 독일보다 1.6배가량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40시간을 일해서는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임금 구조가 큰 몫을 차지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기본급 수준이 엄청 낮을뿐더러 간접임금이라 할 사회보장 수준도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더 오랜 시간 일을 해서 수당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그렇게 해도 전체 노동자의 23.5%가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이다(고용노동부 '2015년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기준). 부족한 임금을 채우기 위해 장시간 노동이라도 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대한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자본의 논리에 호응한 정부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돈 써라)’ 수준의 임시 공휴일 지정은 권력의 잔인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비단 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생들의 경우도 외국에 비해 과도한 학습 시간으로 인해 휴식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한국이 가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협약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조항이 있음에도 다른 나라들보다 하루에 3시간이나 많은 시간을 붙들려 있어야 한다. 육아를 비롯한 가사일이 가족과 그 주변의 몫이 되는 현실에서 가사일을 보는 이들도 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누군가에게 “편히 쉬어야지”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임시 공휴일이 필요하다면 이처럼 쉬지 못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휴식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서였어야 했다. 소비를 촉지한다는 목표이기보다는.
진짜 잘 쉬기 위해 필요한 것
휴식은 소비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며 다음 노동을 위한 재충전 수단이어서도 안 된다. 쉴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권리 영역이다. 세계인권선언도 별도의 조항(24조)을 통해 근로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일을 포함한 휴식과 여가가 권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때 쉴 권리는 단순히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휴식 시간을 주는 것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주 40시간 노동제가 시작되었지만 현장에서는 집중 근로시간이 설정되거나 시간당 생산량을 노동자가 버틸 수 있는 최대한도로 잡는 등 노동 강도는 더욱 세졌다. 게다가 쉬는 시간마저 청소를 해야 하는 등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다. 결국 강화된 노동강도로 파괴된 노동자의 건강권이 잠시의 휴식으로 돌아오긴 어렵다. 쉴 권리는 노동의 시간에서도 일상적으로 기획되고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휴식이 당사자의 주체적 관리 속에 이루어져야함은 분명하다. 노동현장이 노동자의 건강권을 해치지 않을 수 있도록 기획되고 노동자들이 원할 때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쉴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될 때 쉴 권리는 실현가능하다.
또한 쉴 권리는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직원을 배려하지 않는 임시공휴일은 반대한다는 의견이 46.4%나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쉼마저도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임시공휴일에도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67%는 일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임시공휴일이 아니라도 일상적으로 해고 및 인사 평가의 위협 때문에 연장 및 휴일 근무를 거부하기 어려운 조건의 노동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쉴 권리는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 정작 정부는 2012년 기준으로 140개 업체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위반 여부를 감독한 결과 124개 업체를 적발했음에도 거의 제재하지 않았다.
쉴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건강한 삶이 소득과 떨어질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절한 최소소득의 보장은 필수 불가결하다. 영국의 보건학자 제리 모리스는 모든 사람이 건강할 수 있는 최저소득 개념인 건강 최저소득을 주장하였다. 한국에서도 2009년에 이 개념에 따라 건강생활을 위한 최저 소득을 계산하였더니 250만 원으로 잡혔다. 2009년 기준이니 지금 다시 환산한다면 더욱 늘어날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주40시간 일을 해도 최저임금은 월126만 원에 불과하다. 이는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건강 최저소득을 보장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1만 원 이상으로 인상하는 것을 비롯해 사회적 간접임금 등을 확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쉰다는 것이 주변에 부담이 되어서 쉴 수 없는 조건을 바꾸어내야 한다. 거의 포화된 노동강도로 노동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연차 사용이나 육아 휴직이 다른 이들의 노동의 부담을 더욱 강화시키는 현재의 상황에서 쉬는 것은 죄가 된다. 쉬는 것이 장려될 수 있고 실질적으로 다른 이들의 노동 부담이 되지 않을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육아를 비롯한 가사 노동 등이 특정인에게 몰린 상황에서 이들이 실질적으로 쉴 수 있도록 공공 보육 서비스를 확충하는 등의 시스템이 마련될 때 쉴 권리는 사회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이번 임시 공휴일을 그러한 논의를 공론화하는 계기로 삼음은 어떨까.
쉬라는 말이 위협이 되는 세상을 바꾸어내야 할 때
졸속적인 이번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여기저기서 혼란을 겪고 있다. 그 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맡길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고, 법정도 잡힌 재판일정을 옮기느라 정신이 없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한다는 선심성 공약도 지방자치단체들과 협의 없이 발표되었다. 결국 이번 임시공휴일은 쉬는 것마저 맘대로 못하고 휘둘리는 우리의 삶을 확인하는 순간이면서 쉴 수 없는 이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만 남기게 되었다.
자본과 정권의 논리대로 소비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면 이를 보장할 소득이 있어야 하지만 임금피크제 시행,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오히려 쓸 돈은 줄고 있다. 재벌의 사내유보금만 느는 소득과 소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하는 현실에서 쉬어서 내수를 늘리자는 것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도리어 연장 및 휴일 근무시간을 자본의 주장대로 주 28시간 보장하여 총 주68시간 노동이 가능하도록 근로기준법을 운영하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쉬운 해고 규정 적용, 구조조정을 거론하며 하루하루 일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정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임시공휴일은 당장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지목된 거제와 통영 지역의 조선소 노동자들에게는 달가운 일일까. 쉬라는 말이 공포가 되는 현실에서 쉴 권리는 결코 지켜질 수 없다.
덧붙임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