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다 자신들의 어떤 가치와 추구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활동들을 많은 단체들이 하는데, 그걸 이거는 이렇고 저거는 좋고 저건 나쁘고 그렇게 대통령이 막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고...” _박근혜, 2016년 4월 26일 기자간담회 중
유체이탈도 이런 유체이탈이 없다. 어버이연합의 배후로 청와대까지 연관되었다는 말이 나오는 마당에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대통령이 저렇게 대답하는 심리는 짐작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 발언은 꼬투리 잡으려고 인용한 것이 아니라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헌법에 명시된 집회와 시위를 열겠다는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배후에서 불법과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으로 규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어떻게 어버이연합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논리로 가져오면서 ‘꼬리 자르기’조차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보수의 홍반장
2006년에 온라인에서 보수논객과 같은 활동을 하던 이들이 당시 노무현 정권의 안보의식에 불안을 느껴 추선희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노인층을 조직해 만든 단체가 바로 어버이연합이다. ‘노인복지단체’를 표방하며 무의탁 노인이나 독거노인의 무료급식제공과 노인 복지 향상을 목표로 내걸고 약 17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물론 알려져 있듯 어버이연합이 단순한 노인복지단체는 아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을 하며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중에 반대편에서 확성기를 들고 유가족이 의사자로 지정되려고 한다는 루머를 퍼나를 때,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퀴어퍼레이드를 물리력으로 막아설 때,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에 희망을 담은 버스가 출발할 때 절망의 이름으로 막아설 때, 통합진보당이 강제로 해산될 때,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이 장례를 치를 때도 어김없이 등장한 단체가 어버이연합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들과 지향이 다른 정치인은 여당 야당을 막론하고 규탄하며, 북한으로 ‘삐라’를 날려 보내고, 민중의례, NLL문제, 언론사의 보도까지 문제 삼으며 방식에 있어서도 부관참시, 화형식 같은 퍼포먼스는 물론 물리력행사도 거리낌 없이 행사해왔다. 이런 행태들은 어버이연합을 극우보수단체로서 ‘꼴통 보수 할배’들이 모여 얼토당토 않는 안보교육을 하며 각종 이슈에 등장해 시민들을 향한 테러를 자행하는, 공포스럽지만 좀 우스운 친정부조직으로 위치시켜왔다.
어버이연합이 뭐길래?
그런데 도대체 어떤 시민단체가 그것도 실제 회원 수는 200여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분야와 내용을 막론하고 모든 이슈에 등장하여 실력행사를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지금은 이 노인복지단체가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핵심 권력들이 모여 있는 전경련에서는 돈을 받고 청와대 행정관에게 직접 지시를 받아 움직여왔다고 밝혀졌다. 더 놀라운 점은 전경련에서만 2012년 2월부터 2014년까지 5억이 넘는 돈을 받았고 경우회나 CJ, SK하이닉스 같은 회사에서도 돈이 건네졌다고 밝혀졌지만 아직도 빙산의 일각의 일각이란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청와대의 지시만이 아니라 컨트롤은 국정원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게 만드는 노인복지단체라면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봐야하지 않을까? 그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고 그 행위들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부가 테러방지법에 드라이브를 걸 때 든든한 지지자를 자임했으며 무상급식과 같은 이슈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로서 자리매김했다. 노인들이 망령이 났다고 손가락질하는 사이에 재계와 정계를 등에 업고 다양한 시민사회영역으로 동등한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 자격이 보수 이데올로기와 공권력의 집행력 사이를 넘나들며 윤활유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밝혀진 어버이연합의 커넥션은 광장에서 실력을 행사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시민사회가 기존의 대응처럼 비웃고 묵과할 수 없다는 경보다. 단순히 할배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니라 권력의 물리적 표현이다. 어버이연합이 뉴스를 도배하던 2014년에 여름에 ‘서북청년단재건위’가 등장하고 지속적으로 혐오를 확대 재생산해 기독자유당이 20대 총선 비례투표에서 60만 표를 훌쩍 넘는 지지를 받은 것들은 우연이 아니다.
서북청년단과 어버이연합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이런 활동력을 보여준 조직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해방 이후 남한사회에서 이승만이 정권을 잡고 유지하는 내내 그 힘으로 작용한 세력이 바로 서북청년단이나 대한청년단같은 집단이었다. 그때도 정치권력의 하수인이자 파트너를 자임하며 폭력으로 민중의 삶을 위협했고, 정권과 미군정의 비호와 지원 속에서 노동자를 탄압하고 정당을 해산시키는데 일조하며 무엇이든 종북몰이를 했다. 이른바 ‘정치깡패’의 출연이었고 그들은 권력집단의 칼이었다. 이 정치깡패의 역할은 단순히 좌파의 탄압을 넘어 정권을 위협하는 경쟁상대를 제거하고 민간인을 학살하여 반공과 자유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있음을 정체성으로 여겨왔다.
이와 관련해 뉴라이트 계열에서 서북청년단을 우유부단한 보수 우익세력을 반공과 건국의 방향으로 강하게 이끌고 간 세력으로 평가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어버이연합을 포함한 극우단체에서 자신들의 실력행사 명분이자 자신들이 지켜야할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가 바로 이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과거에는 좀 더 직접적인 폭력으로 좀 더 비공식적으로 사람들을 위협했다면, 지금은 거리와 광장에서 공공연히 시민의 이름으로 혐오와 폭력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다시 대통령의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 많은 다양한 활동을 하는 단체 중 하나로 어버이연합을 포함한 극우 보수단체들이 위치시키는 발언이다. 자발적 극우라는 미명아래 포지션은 정치깡패인데 그 혐오와 폭력에 책임을 물을 주체는 등장시키지 않는 것이다. 온갖 권력집단들의 비호가 드러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버이연합은 더 이상 희화화하고 조롱을 하면서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시야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정·재계와의 커넥션은 계기에 불과하다. 설사, 커넥션 없이 자발적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 중 하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오히려 그들의 자발성을 과연 자발성으로 여길 수 있는가 문제 삼아야 한다. 표현의 자유가 이미 표현의 자유를 획득한 이들의 차별적인 언어까지 옹호해주지 않듯, 권력의 물리적 표현을 자발성으로 발현되는 다양한 행동으로 읽을 수 없다. 어버이연합의 폭력과 혐오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짊어져야 몫이다. 정·재계와의 관계는 배후의 개입이 아니라 일체화된 권력의 방증이다. 그들이 내는 것은 동등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아니라 권력의 시민사회 개입이자 광장에서 저항하는 민중들이 만들어온 역사를 뒤틀려는 권력의 카르텔의 발현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필요하다.
덧붙임
디요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