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니까 두렵지 않아요"
7일, 구리시청 앞. 저녁 어스름 속에서 피켓을 든 30여명의 여중생이 시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었다.
"박영순 시장은 사죄하라!"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라!"
구리시 안창동 최촌마을. 지난 해 7․8월에 있던 강제철거가 떠오른다. 용역깡패들의 악랄한 강제철거. 200여명의 항의 연좌시위. 연행 66명 구속 3명. 다시 300여명 시위. 전원 연행…. 그러나 이렇게 시끌벅적했던 마을 세입자들은 대다수 떠나버렸다. 이젠 갈 곳 없는 생활보호 대상자들과 집 3채만 남은 버려진 동네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어제 이 중 한 채가 철거된 것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구리시청으로 찾아와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 동네 7명의 아이들 중 제일 큰 누나인 이혜란 양(구리여중 3)도 물론 여기에 끼어 있었다.
"시청 직원들이 몰려와 밤새도록 우리와 몸싸움을 벌이면서 세 차례나 천막을 걷어갔어요" 주민 박정자(53) 씨의 말이다. 새벽 1시쯤에는 술에 취한 시청직원들이 들이닥쳐 주민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 이 날 밤 시청 직원 4명은 비닐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 양에게 달려들어 목과 가슴을 마구 밀치는 폭행을 가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아이들까지 저렇게 몰려와 데모를 하겠어요?" 주민의 말에 다시 피켓시위대로 눈길을 옮겼다. 여중생들은 이혜란 양의 학교 친구들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우리는 떳떳하니까 무섭지 않아요" "집을 강제로 부수고 사람 때리기까지 하는 건 용서할 수 없어요"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힘들지만 친구들이 있어서 든든해요. 무엇보다 시청에서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사과해야죠" 이 양의 말이 야무지다.
안대봉 주택계장은 상식적으로 직원들이 폭력을 행사했을 리 없다고 잘라 부인했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17만 시민이 사용하는 공공시설인 시청 앞에 천막과 피켓은 절대로 안됩니다"
거센 바람이 참담하게 찢어진 비닐 천막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천막 속에서는 대여섯살 돼보이는 아이 둘이 겨울옷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고 있었다. '천막과 피켓은 절대로 안된다'던 시청 직원들이 그 천막을 철거하면서 폭력을 행사했는지 안했는지는 그야말로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될 것이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라!" "박영순 시장은 사죄하라!" 여중생들의 가녀린 구호가 황사바람에 흩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