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등학교 현직 교사가 국정원으로 연행되었다. 민혁당 조직원으로 고등학생들에게 주체사상을 전파했다는 것이 이화 외고 박정훈 교사에게 걸린 주요 혐의다.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뚜렷한 물증도 없이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의 이번 수사는 최근 구체화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폐 움직임을 뒤집어 보려는 수구세력의 고심에 찬 작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국민의 '안보불감증'에 빨간 신호등을 켜기 위해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고등학교 현직 교사를 연행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일까? 설령 그가 무혐의로 석방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손해날 건 없다. "현직 교사가 버젓이 학교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칠 수 있는 마당에 국가보안법 개폐가 웬말이냐"라는 위기감을 퍼뜨리는 데 성공하는 셈이니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나리오 밑바닥에 깔려있는 또 다른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청소년 관에 대한 염려이다. 아이들은 무조건 교사의 의도대로 조종되는 판단력이 없는 존재라는 인식, 교사가 하는 말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인식, 그러하기에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독버섯처럼 존재하는 '빨갱이'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연일 '선생님 사랑해요,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며 박 교사의 석방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을 염려하고 제재를 가하는 학교측의 태도에도 여지없이 이러한 인식은 깔려있다. 그런데 학생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결국 학교측은 학생들의 집회 참가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8일, 명동성당 들머리는 교복을 입은 채 선생님의 석방을 촉구하는 3백 여명의 학생들로 가득 메워졌다. 하지만 이날 집회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학생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위축된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는 묻고자 한다. 학교가 과연 '아이들 보호'를 앞세워 아이들의 집회 참석 여부를 허용하고 말고 할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명백하고도 현재 하는 위험'도 없이 헌법과 국제조약이 보장하는 아이들의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짓밟아 버릴 수 있는가?
박 교사가 연행된 사실 그 자체와 그리고 이후 빚어진 일련의 사태로부터 학생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있다. 아이들의 인권은 기본적으로 교장이나 교사, 그 누구에 의해서도 자의적으로 제한될 수 없다는 진실을 확인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