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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사건 끝나도 인권피해 '진행중'

인권의료복지센터 발기인대회 열려

"20여 일간 안기부에서 엄마가 구타당하는 것을 지켜봤던 세살박이 아들이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됐다. 그 아이가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

92년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구속돼 고문수사를 받았던 황인오 씨의 가족에겐 지금도 고문이 '진행중'이다. 인권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치유과정이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15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국제회의실에서는 인권피해자에 대한 의학적·사회적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인권의료복지센터' 설립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인권병원' '인권피해센터' 등의 이름도 거론됐지만, 인권피해자들을 단순한 '환자'로 파악하지 않고, 치료뿐 아니라 재활과 복지를 함께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인권의료복지센터'라는 이름으로 최종 결정됐다<관련기사 본지 11월 25일자 참조>.

이날 발기인대회엔 인권피해자들이 직접 참석해 인권의료복지센터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영순 5·18부상자회 전 회장은 "5·18부상자들에게 발급된 의료보호카드로는 일반치료만 받을 수 있을 뿐, 전문적인 재활치료까지 받지는 못 한다"며 "척추를 다쳤던 한 부상자는 이제 정신마저 이상해져 결국 아편에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황인오 씨는 "장기간 감옥에 있던 사람들은 오랜 격리 끝에 사회로 나오기 때문에 가족과의 심리적 결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자식과의 갈등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당한 여정남 씨의 조카 여상화 씨는 "살아남은 사람과 가족들을 볼 때면 차라리 삼촌이 그때 잘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발기인의 한 사람인 김록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상이군경들에겐 보훈병원이 존재하고,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에게도 요양치료가 보장되지만,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에겐 아무런 대책도 존재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인권피해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만큼, 민간에서라도 이 일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발기인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가 과거 인권피해의 진상을 체계적으로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