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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농성수배자들, 갈 곳 잃어

명동성당측, 성탄행사 이유 수배자천막 철거


명동성당에서 장기농성을 벌여왔던 한총련 관련 정치수배자들이 엄동설한 속에 내몰릴 처지가 됐다.

한국통신 노동자들이 파업농성을 풀고 명동성당을 빠져나간 22일, 성당 신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치수배자들의 농성천막을 걷어버렸다. 성탄행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농성중이던 정치수배자 진재영(94년 전남대 총학생회장·30) 씨와 이동진(99년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 ·25) 씨는 이날 자신들을 지지 방문한 범민련 이종린 의장 등 3명과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던 오후 1시경 천막을 철거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어 10분 후 들이닥친 30여 명의 신도들은 안에 있던 사람들을 내쫓고 해머 등으로 천막을 부수기 시작했다. 2백19일 동안 수배자들과 함께 해온 천막은 단 10여 분만에 그렇게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천막을 못 치게 하면 우리를 쫓아낸 사제관 앞에서 노숙이라도 할겁니다." 철거를 당한 진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한겨울 추위에 이미 빨개진 그의 얼굴은 분노로 더욱 붉어졌다. "이것이 노벨평화상 대통령이 있는 나라의 현실인가요?" 진 씨의 목소리는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함께 농성 중이던 이동진 씨도 철거 현장에서 신도들에게 항의하다 폭행을 당해 다리와 팔 등에 찰과상을 입고 안경알까지 깨졌다. 이 씨는 "성당을 나가면 몇 분 이내에 체포될 것이 뻔한데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라고 호소했다. 수배자들은 천막 안에 있던 가재도구를 비롯한 물품들을 성당 들머리 한쪽에 놓아두고 농성을 계속 진행했다.

한편 명동성당 장년분과 위원장 김정기 씨는 이번 철거가 "지난 10일 열렸던 상임위원회의 결과"라며 "지금 농성중인 학생들은 명분도 없을뿐더러, 사회 통념상 죄를 졌으면 벌을 받아야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명동성당 농성장 철거 소식을 전해들은 범민련 관계자들과 30여 명의 단국대 학생들은 즉시 명동성당에 모여 수배자들이 계속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