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왕국의 꿈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한다는 일상적 논리를 앞세운 매서운 한파가 한반도 전역을 휩쓸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면 헐벗고 굶주린 민중의 삶은 더더욱 고달파진다. 부패한 위정자들과 자본권력의 위세 앞에 움츠리고 있는 힘없는 국민들의 한숨 소리는 깊어만 간다.
동해 바다의 세찬 바람에도 울산 미포만의 육중한 크레인들은 움직이고 석유화학공단 굴뚝에서는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다. 첫 글인 만큼 재벌 현대그룹을 소재로 해야겠다. 현대왕국으로 불리는 울산을 소개하는데 제격이다.
작년 11월 말 울산에서는 처음으로 울산대학교에서 5일간 울산인권운동연대 주관으로 인권영화제를 열었다. 학교측으로부터 시설 사용허가를 받고 준비중이었는데 개막 이틀 남겨두고 이유도 없는 행사 불허 공문을 받았다. 결국 '공 식 불허 비공식 허용'이라는 해프닝 속에 영화제를 치렀다. 그 내막을 보면 현대그룹이 막강 파워와 치졸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울산대학교의 재단은 현대고 정몽준 국회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다. 외부에서 걸려왔다는 전화 한 통화에 총장이 결제까지 한 외부 행사를 취소하겠다는 말에 한참이나 할 말을 잊었다. 재단사무국인지 위원사무국인지 현대중공업인지 학교관계자들조차 엇갈리는 대답으로 봐서 이 모든 기관이 울산대학교 행정에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울산과학대학 또한 같은 재단 소속이므로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울산의 대형 백화점 세 곳 모두 현대백화점이고 이외의 백화점들은 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았다. 재벌 소유가 금지된 지역민방인 UBC 울산방송마저 백화점을 인수하며 슬며시 계열화시켜 버렸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미포조선 등이 있는 울산 동구는 그야말로 현대왕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울산대학병원, 호텔, 문화회관, 백화점, 복지관 등등 사회 주요기관들을 장악하고 있다. 현대 재벌이 사회환원인양 우기지만 그 구조나 역할을 보면 교묘하게 지역사회 관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자기들의 구미를 충족시키고 있다. 현재 현대재벌 자본의 울산 동구 장악 음모는 구청과의 법정소송으로 비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울산 동구는 지난 보궐선거에서 노동자 서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압도적인 표 차로 동구청장에 이영순씨가 당선된 곳이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해고 노동자들이 회사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자 불법 노상점거라며 구청에 철거를 요청했다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지적하며 거절당하는 등 지역 장악력이 약화되자 노동계 출신 구청장을 고사시키려는 음모가 진행중인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조합에 대한 무력화 시도는 일정정도의 효과를 얻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그에 대한 대응이 시급한 실정이다.
◎ 최민식 씨는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