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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당신의 이웃', 비정규노동자들이 싸우는 이유②

7천 해고자에게 닫힌 '대화의 문'


한 노동자가 누워있다. 또 한 노동자가 죽었다. 그리고 어느덧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275일을 넘겼다.

지난 1월 15일 경기도 분당 한국통신 본사 앞 집회 도중 27세의 계약직 노동자 이동구 씨는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 못했다. 당시 이 씨는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 속에 경기도 분당의 한국통신 본사 앞에서 "부당해고 철회,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 후로 반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이 씨는 말을 하지 못한다. 왼쪽 뇌세포가 절반 이상 죽었다는 진단을 받은 이 씨는 분당재생병원·삼성서울병원을 거쳐 위험한 상태는 넘겼지만 오른쪽 전신마비와 언어장애가 그의 생활을 점령해버렸다. 대전대학교 한방병원·일산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지금 그는 농사짓는 아버지와 중풍을 앓는 어머니 곁인 공주에서 대전을 오가며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12일 서울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만난 같은 계약직 노동자 구강회 씨는 이 씨의 얘기를 하면서 줄곧 목소리가 떨렸다.

기자는 지난 5월 16일에 갑작스레 죽은 한승훈 조합원에 대해서도 물었다. 잘은 모른다며 구 씨는 말을 뗐다. "마지막 본 건 5월 10일이에요. 서울 을지 상가 앞에서 대우차 관련 집회던가. 유난히 얼굴이 검고 안 좋아 보였어요. 파업이 길어지다 보니 생활고 등 어려움이 많았죠. 16일 아침에도 집회에 나오던 참이었대요. 몸이 안 좋아 보인다고 집에서 만류하는 걸 '그래도 같이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쓰러졌대요." 가족들의 원망은 없었냐는 질문에 "왜 없었겠어요."라며 구 씨는 말을 잇는다. 동료들은 한씨가 일하던 대방전화국 앞에서 노제를 치러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 씨의 가족들이 원하지 않아, 동료들의 희망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싸움의 이유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이렇게 힘든 싸움을 하는 걸까? "IMF가 되면서, 계약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월 140만원에서 83만원으로 떨어졌어요." 4대보험도 적용되지 않았다. 20년을 줄곧 전화선로 가설·보수 일을 해온 구 씨는 회사에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번번이 다음 재계약 때 올려주겠다는 사탕발림 뿐, 회사는 약속을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자는 의식이 노동자들 사이에 확산되었다. 그리고 지난 해 10월 계약직 노동조합은 어렵사리 설립필증을 받아냈다. 하지만 곧이어 회사측은 노조간부들을 징계 해고했다. 11월 말엔 계약직노동자 1천명을 해고했고, 12월 말엔 6천명을 해고하겠다는 방침이 발표됐다.

계약직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 건 12월 13일. 한국통신처럼 필수공익사업장으로 분류되는 곳은 파업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사건이었다. 번번이 직권중재 조항 때문에 발목이 묶이거나 '불법파업'의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당시 중앙노동위원회는 한통 계약직노동자들의 파업을 직권중재에 회부하지 않았다. 그 때의 상황을 박윤배 중노위 공익위원은 이렇게 기억했다. "회사측이 부당하다는 판단을 했죠. 노동자들이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다 안되니까 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해놓은 상태였어요. 근데 회사는 교섭 기간 중에 계약해지를 강행하면서 교섭 의지를 보이지 않았죠. 계약해지의 규모도 7천명이니 지나치다 생각됐어요. 그래서 공익위원들이 노조 측의 의견을 수용해서 조정안을 냈는데 사 측이 거부했던 거죠." 중노위는 사 측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계약직 노조의 합법파업을 승인한 셈이었다.


굳게 닫힌 대화의 문

"어제 동료 재판에 갔더니 판사님이 요즘 사회엔 대화의 문이 열려 있는데, 왜 거리에서 투쟁만 하냐고 하대요. 참, 누군 대화하기 싫어서 안 하나요." 노동자들은 지난 겨울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위 속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사 측에 교섭을 요구했다. 언론의 무관심이 서러워 한강철교 위에 올라가 현수막도 내걸어봤다. 법률적인 구제절차도 밟았다. 하지만 사측은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방침에 따른 것이라는 같은 말을 되뇌며 교섭에 임하지 않고 있다. 정부도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다. 각 전화국 앞에서 노동자들을 맞아주는 건 줄지어 선 전경들뿐이다. 이렇게 노동자들의 275일이 지나갔다. "우리도 이 싸움 빨리 끝내면 좋죠. 하지만 그냥 접을 순 없어요. 비정규직이 계속 늘고 있는데, 일단 우리가 이겨야 다른 노동자들도 희망을 갖게 되죠. 깨지더라도 끝까지 가야죠." 구 씨는 말한다.

지금 한통 계약직노동자들은 닫힌 '대화의 문'에 몸뚱이를 던지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 만들기를 하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응답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