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대법원은 2009년 철도파업에 따른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기태 전 철도노조 위원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 판결했다. 2009년 5~6월의 안전운행 투쟁은 식당 외주화 반대를 내건 것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닌 불법 쟁의행위이므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2심 판결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6월에도 업무방해혐의로 기소된 신라정밀지회 노조 간부 6명에 대해 일부 무죄를 판결했다. 두 사건 모두 지난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2007도482) 따른 것이다.
2011년 당시 대법원은 2006년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파업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이나 손해를 초래한 경우에만 업무방해죄가 성립 한다’고 판결해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닌 경우에는 무조건 업무방해죄에 해당 한다’는 기존 판례를 뒤집었다. 비록 사용자 중심의 ‘예측가능성’과 ‘심대한 혼란과 손해’를 조건으로 달긴 했지만, 쟁의행위 자체를 범죄시하던 판례에서 한 걸음 나아간 판결이다. 한편 2010년 헌법재판소는 업무방해죄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업무방해죄에 대한 대법원의 기존 판례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쟁의행위는 원칙적으로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돼 처벌할 수 있지만 노조법상 정당성이 인정되면 처벌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가 ‘일반 형법을 과도하게 적용해 쟁의행위를 원천적으로 범죄로 보게 하는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판례들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대한 탄압은 여전하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9년~13년 11월까지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사람은 2만 4316명에 달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도 결국엔 업무방해죄의 합헌성과 철도노조의 업무방해죄를 인정했다.
집단적 저항권에 대한 체계적인 탄압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노동자의 파업권-업무방해죄에 대한 검경과 사법부의 태도가 집회시위의 권리-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한 태도와 너무도 비슷하다는 점이다. 헌법 33조에 따라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기본권으로 규정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 구체적 실행을 위한 법률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노동기본권의 실현을 위한 수많은 유보조항과 전제조건을 덕지덕지 붙여놓아 사실상 노동3권을 봉쇄하거나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작동하도록 한다. 집회 및 시위 또한 헌법 21조에서 언론출판, 집회결사의 자유를 통해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집회에 관한 모든 사항을 경찰의 통제 아래 놓이게 한다.
심지어 헌법 21조 2항에서 허가제를 금지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집시법에 따라 집회신고에 대해 금지통고를 남발해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한다. 노조법은 모든 이들이 누려야 할 노동기본권의 주체를 노동조합으로 한정하고 그 노조마저 온갖 조건을 갖춰야만 설립(신고제임에도!)을 허가해준다. 쟁의행위는 근로조건에 관한 것으로 한정한다면서 간접고용이나 정리해고, 민영화처럼 고용과 노동조건에 직접적인 사안으로 파업을 하면 불법으로 규정된다. 누구나 자유롭게 집회시위를 하라고 하면서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집회를 할 것인지 신고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불법집회로 규정된다.
그리 가까워 보이지 않는 노동권과 대표적인 자유권 중 하나인 집회시위의 권리를 권력이 해석하고 다루는 방식이 놀랍게도 비슷하다. 하늘에 높이 떠 있는 헌법으로는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뻔뻔하게 선언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모든 쟁의행위는 기본적으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이고 도로를 이용한 모든 집회시위는 ‘교통소통 방해’이다. 그 중에서 노조법과 집시법을 잘 준수한 ‘합법’파업과 ‘합법’집회시위만 예외적으로 인정하겠다는 그 태도 말이다. 쟁의행위, 집회시위 자체를 기본권의 정당한 권리행사로서 존중하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범죄행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시민, 노동권과 시민권이라는 이질적인 외양에도 불구하고 체제를 수호하는 권력이 볼 때, 투표하기(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선 집회시위나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위협하는 노동자 파업의 차이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것이다.
권리와 범죄 사이
쟁의행위와 집회시위 같은 집단적 저항에 대한 국가권력의 관점과 태도가 이러할 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결국 운동의 힘밖에 없다. 의회를 통한 대체입법도, 사법부의 판단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대안적 법해석론도 이를 추동하는 운동이 없다면 모두 불가능하다.
집회시위와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대한 권력대응의 유사성을 이야기했지만, 분명한 차이도 있다. 7~80년대 군부독재시기에 활발하게 벌어졌던 민주화 투쟁은 거리에서의 격렬한 가두투쟁, 집회시위로 상징된다. 한국사회에서 적어도 집회시위는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역사적 집단경험으로 남아있다. 2011년 10월 경찰청이 주최한 ‘선진 집회시위 문화 정착을 위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동아일보 기자는 합법/불법, 폭력/비폭력을 엄격히 구분해 대응하겠다는 경찰의 입장에 대해 80년대 민주화 투쟁 시기 집회를 이야기하며 정당한 집회를 가르는 기준은 결국 집회시위 정당성이 얼마나 인정받느냐가 되지 않겠냐고 말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헌법과 같은 상위법에서 별도 조항을 통해 집회시위에 대한 허가와 검열을 금지하는 것 역시 한국 현대사의 경험을 공히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집회참여자들을 처벌하는 주요 근거로 기능하던 일반교통방해가 이슈화 된 것은 2008년 대규모 촛불시위로 1300여 명이 기소되면서부터다.
반면 우리는 노동자들의 파업, 각종 쟁의행위와 관련한 공동의 집단경험이 부족하다. 한국사회에서 파업은 언제나 ‘제 밥그릇 챙기기’, ‘무고한 사람들을 볼모로 잡는 행위’, ‘경제를 망치는 행동’이었다. 형식적 민주화와 더불어 시민의식은 고양되어갔지만, 노동자 계급의식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몇몇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했던 노동운동의 경험과 96-97년 총파업이 현재 한국사회 노동자 계급의식, 사회적 지지를 형성할 수 있는 집단경험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 노동자 쟁의행위에 대한 형법 상 업무방해-민법 상 손해배상-사측의 징계, 해고가 별 거리낌 없이 이루어지는 이유이다.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 범죄가 아닌 정당한 권리행사가 되기 위해선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와 작년 말 철도파업에서 보였던 국민적 지지, 노동자 투쟁이라는 공동의 사회적 경험 만들기가 반복-변주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