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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장여경의 인권이야기

인권의 이름으로 옹호해야 하는 것


울산인권영화제(현재 ‘인권과 평화를 위한 울산영화제’로 명칭변경)의 <밥․꽃․양> 상영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10월 11일부터 개최될 예정이었던 이 영화제 홈페이지(http://ulsanhr.jinbo.net/hrfilm.htm) 게시판에 지난 7일 <밥․꽃․양>의 제작팀 라넷(LARNET, Labor Reporters' Network)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제2회 울산인권영화제 상영을 거부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것이 발단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표현의 자유’, ‘사전 검열’ 그리고 ‘프라이버시’와 같은 ‘인권’의 이름이 부르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거론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외압의 여부와 이 외압으로 인한 상영 결정 보류가 있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밥․꽃․양>은 98년부터 지난해까지 울산 현대자동차 식당여성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투쟁과 회사와 노조를 상대로 한 원직복직 투쟁과정을 담고 있는 영화로 기존 노동운동의 관성과 폐해를 고발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영화제에 참여한 여성단체에서 정리해 올린 경과에 “<밥․꽃․양>에 대해서 현장조직에서 *** 발언 뒤 ===가 하는 멘트가 나오는 장면이 상황을 무마하려는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다고 한다”는 대목은 이 작품을 둘러싼 외압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한 민중에게 ‘울산’이 주는 어감은 각별하다. 울산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상징이고, 남성․정규직․대기업 노동조합의 전투적 노동운동은 이 땅 노동운동의 구심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이 과정에 여성노동자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는 것 같다. 이 역사는 노동운동이 가장 억압받고 소외받는 이들의 피눈물나는 투쟁으로부터 양적으로 성장해오고 질적으로 성숙해 왔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래서 오늘 장애인 노동자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리고 또다시 여성 노동자들이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자본과 국가 권력의 억압 속에 더욱 참담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자본의 정리해고에 대해서 뿐 아니라 관료적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저항한 울산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남한 사회운동에 매우 소중하다.

이 점을 우리가 확인한다면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표현의 자유는, 그리고 영화제와 같은 열린 표현의 공간은, 가장 억압받고 소외받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미 아쉬울 것 없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것들이다. 인권의 이름을 한 영화제가 가장 강력하게 옹호해야 하는 것은 바로 표현의 자유라는 점에서 이번 인권 영화제는 제 자격을 잃었다 할 수 있다. 인권은, 자본과 국가권력에 대항할 때만 필요한 개념이 아니다.

(장여경 씨는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