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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정리해고, 또다른 비극의 출발

대우차 해고자, 총체적 '삶의 질' 후퇴


자신도 모르게 삶을 덮쳐온 불청객 정리해고. 그 희생자인 해고자의 삶은 '삶이 아니'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았다.

전국금속산업연맹(위원장 문성현)은 10일 오후 서울 종로성당에서 "정리해고 노동자의 삶의 질과 건강상태 조사결과 발표 및 대책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지난 2월 대우자동차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의 실상을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7월부터 8월 말까지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소장 김록호)와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대표 조옥화, 문병호)가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정리해고자 2백47명을 모집단으로 하고, 동종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K사의 현직 노동자 1백67명을 비교군으로 해, 설문조사와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정리해고가 노동자의 삶을 얼마나 철저히 파괴하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실업급여로 근근히 생활하는 해고노동자들의 경우, '전단지를 돌리고 일용직 노동에 종사'하면서 겪는 자괴감과 절망을 생생하게 토로한다. 한 노동자는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는 일주일, 열흘 눈물 흘리면 다 잊어버리는데, 해고당한 날부터는 괜히 눈물이 나요, 눈물이 나면 안 되는데, 내가 떳떳하면 괜찮은데, 억울하니까 눈물이 나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또 해고노동자들은 "이제 곧 끊기게 될 '실업급여에 대한 기간 연기'를 어떻게 하는가"라는 점에 가장 큰 관심을 보임으로써,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 측은 "해고가 소득·가족관계·심리적 안녕·건강 등에서 부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임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우선, 소득의 격감으로 인해 생활 곤란·주거형태의 변화를 겪은 사람이 20.7%로 나타났고, 실업급여 종료 후 생활 대책이 전혀 없다는 응답자도 36.4%에 달했다. 식료품비를 억제하고 있다는 노동자는 무려 80.5%나 됐다.

가족관계에 있어서 대화가 줄어든 가정은 69.4%, 부부싸움이 잦아진 가정은 72.6%, 성생활이 줄어든 부부들은 65.4%로 나타났다. 또한 정리해고 이후 이혼한 가정이 1가정, 이혼을 논의하는 가정은 16가정, 별거상태에 들어간 사례는 5가정으로 조사됐다.

해고가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분석도 나왔다. 건강상태가 악화됐다고 응답한 사람이 80.9%, 의료기관 이용이 증가했다는 사람이 28.7%에 달했다. 특히 정신건강수준을 측정한 결과, 비교집단인 현직자들이 13점을 얻은 것에 비해 해고자들은 24.2점을 얻어 정신건강이 아주 안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고, 이 가운데 가족관계가 나쁜 해고자는 좋은 해고자보다 최고 83배정도 더 정신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미래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현직자들 가운데 65%가 '희망적'이라고 답한 반면, 해고자들은 61.5%가 '비관적'이라고 답했다.

공청회에 참가한 노동환경연구원·사회복지학자들은 "기존 구조조정의 상처는 최근의 경기침체와 맞물려 해고·실업노동자들이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해고·실업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총체적 사회안전망 확충과 치유책들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방안으로 △정리해고에 대한 규제 강화 △실업급여 기간·수준의 재조정 △실업부조 제도 신설 △실업자에 대한 의료제도 개선 등을 제안했다.

자세한 조사결과는 금속연맹 홈페이지(metal.nodong.org)에서 내려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