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서약서에 불복종해 계속 갇혀 있는 것이 내 ‘양심의 법정’에선 떳떳한 일입니다.” 98년 법무부가 사상전향제도를 폐지하는 대신에 준법서약제를 도입하자, 한 양심수는 자신의 소신을 이렇게 밝혔다.
당시 법무부의 발표는 일제시대에 민족해방운동과 진보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된 사상전향제도가 ‘국민의 정부’ 이전까지 유지돼왔음을 정권 차원에서 최초로 인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 도입된 준법서약제 역시 사상전향제도의 본질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다.
준법서약제는 국가가 개인에게 ‘일정한 신념의 표현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양심의 자유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제도다. 대다수가 확신범인 양심수에게 국가보안법의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제한다는 점에서 전향제도와 다름없다. 나아가 준법서약서의 제출 여부는 보안관찰 처분의 주요 잣대로 이용되어 풀려난 ‘양심’들을 다시 창살없는 감옥에 가둔다. 98년 준법서약서를 쓰고 출소했던 송계호씨와 김태완씨가 ‘준법서약제 폐지’를 요구하는 농성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99년 10월과 2000년 1월 각각 재수감된 사례는 준법서약제의 본질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이었다.
준법서약은 비단 양심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집회 ‘허가’의 조건으로 요구되는 서약서, 경찰서에서 난무하는 반성문 강요 역시 준법서약의 또다른 얼굴이다. 갈릴레오에게 ‘천동설’을 강요했던 사상전향제도는 옷만 갈아입은 채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