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규정 60개국 비준 넘어, 설립 박차
집단학살․전쟁범죄․반인도적 범죄를 처벌할 상설 국제형사재판소가 설립된다. 이로써 중대한 인권침해를 저지르고도 형사 책임을 받지 않는 관행에 이제 종지부를 찍게 되리라 기대된다.
11일 콩고민주공화국, 아일랜드, 몽고 등 10개국은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의 근거가 되는 로마규정의 비준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로마규정을 비준한 국가 수는 총 66개국으로 로마규정의 발효에 필요한 60개국을 넘어, 올해 7월 1일부터 국제형사재판소는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재판 권한을 갖게 된다. 98년 로마에서 재판소 설립을 위한 규정이 채택된 지 4년만의 일이다.
재판소가 관할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범죄발생국가나 피고인의 국적국이 로마규정의 당사국이어야 한다. 단, 안전보장이사회가 사건을 재판소에 회부한 경우나 당사국이 아니어도 해당범죄에 대해 재판소의 관할권을 수락한 경우에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재판소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재판소는 당사국이 해당 범죄들을 처벌할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없을 때만 보충적으로 관할권을 행사함으로써 기본적으로 각 국가들이 국내 사법절차를 통해 전쟁 범죄 등을 처벌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재판소가 법정을 열어 재판을 진행하기까지는 1년여의 기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소의 운영을 논의하기 위한 당사국들의 회의가 9월 3일부터 13일까지 열리고, 판사․검사 등은 내년 1월 선출될 예정이다.
앞으로 재판소의 효과적 운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검사의 권한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 자국민의 보호가 어렵다는 점과 자국의 군사령관이 전쟁범죄로 형사처벌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재판소 설립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98년 로마규정 채택 당시 반대한 7개국 중 하나가 미국이기도 하다.
한편, 전세계 1천여 사회단체들로 이뤄진 국제형사재판소 설치를 위한 공대위는 11일 “국제형사재판소는 반인도적 범죄 등이 처벌되지 않는 악순환을 끊어낼 것”이라며 환영 성명을 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 워치 역시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으로 이제 미래의 피노체트나 폴 포트는 결국 자신의 형사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논평했다. 메리로빈슨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국제적 정의의 요청에 따라, 아직 로마규정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들은 조속히 당사국의 대열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정부는 2000년 3월 규정에 서명했으나 아직 비준서를 제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