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권영화제 작품선정이 막바지를 치닫고 있다. 상영작의 규모는 국내외를 합해 35편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전쟁과 인권'으로 모아지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쟁은 인류를 파괴해왔다. 대부분의 전쟁이 '정의'의 이름으로 시작되지만 실상은 권력의 이익을 확장하기 위한 것일 뿐 가장 큰 피해는 민중들에게 돌아간다.
지금까지 선정된 영화 중 '전쟁과 인권'으로 묶이는 작품은 모두 일곱 편이다.
<아프간 전쟁 Jung: in the land of the Mudjaheddins>은 지난 20년 동안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인해 극도로 지쳐있는 아프간 민중들에 대해 말한다. Jung은 달리 언어로 전쟁이지만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아프간 사람들을 지칭할 때도 자주 쓰인다. 1999년 탈레반 집권기, 이태리 출신의 외과 의사 지노는 아프간 북부에 응급병원을 설립한다. 작품은 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환자들을 통해 전쟁과 기아 그리고 폭정에 시달려온 아프간 민중들의 참담한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 작품과 더불어 북부동맹의 총사령관이었던 마수드의 생전을 담은 <마수드 아프간>은 아프간의 전시상황과 그에 얽힌 외세의 개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9.11이 일어난 후 가장 먼저 만들어진 영상물 <9.11>도 상영된다. 사건 직후 카메라는 뉴욕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미국시민들의 반응을 담았다. 충격과 경악은 깊은 반성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에선 아랍인들에 대한 보복 테러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작품은 이러한 전운을 포착하면서 미국이 과거 이라크, 소말리아에서 저지른 침략행위를 상기시켜 미국의 참회를 촉구한다.
걸프전이 미국 민중들에게 미친 악영향을 말하는 작품 <후세인의 미친 노래>도 눈여겨볼 만하다. 진정한 의미의 미국독립영화라고 평가받는 이 작품은 3시간이 넘는 장편 드라마. 후세인 부인은 멕시코계 미국 시민이다. 영화의 배경은 걸프전 발발 직후. 그녀의 두 남매는 하교 후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후세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참혹한 죽임을 당한 것. 비운의 이름을 남겨준 아버지는 어이없게도 이집트 사람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른 두 이야기와 평행선을 이룬다. 하나는 반전 운동에 가담하는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와 나머지는 걸프전에 참전한 군인의 후유증을 다루는 것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살인 경험을 자세히 들려주는 영화 <처음 살인>은 시종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을 낱낱이 밝힌다. 작품은 전쟁이란 인간의 악마적 속성을 가장 나쁜 방식으로 부추기는 '살인기계'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지난 20년 동안 일어난 모든 전쟁을 빠뜨리지 않고 필름에 담아온 전쟁 사진작가도 이번 영화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전쟁사진작가>의 주인공 제임스 나트웨이는 코소보, 팔레스타인, 인도네시아 등지로 우리를 초대해 그곳의 비극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 외에도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패륜행위를 고백하는 <일본군 악마>도 전쟁의 반인륜성에 대해 소스라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