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터키에서 10년 전에 사라진 한 소녀가 가족들에 의해 생매장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제 이슈가 되었다. 소녀가 죽은 이유는 ‘남자 친구와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었다. 더구나 소녀의 죽음은 가족 중 일부에 의해 은밀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가족회의를 거쳐 그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의해 이루어졌다.
‘명예 살인’은 강간이나 불륜 등으로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되는 여성을 가족 구성원이 살해하는 것이다. 명예 살인은 일상적으로 자주 일어나지만 특히 다른 나라와의 전쟁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라크와 최근 한국이 재파병을 결의한 아프카니스탄에서도 전쟁 이후 점령군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많은 여성들이 명예 살인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예 살인은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가족 혹은 민족, 종족의 명예를 내세워 여성들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다만 우리에게 잊혀졌을 뿐..... 바로 일제 시대 강제로 끌려가 전쟁터에서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겪었던 일본군 위안부 혹은 정신대 여성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지난 월요일은 91주년 3·1절이었다. ‘유관순’ 열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언론에 자주 언급되었지만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정신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는 그에 비해 이슈가 되지 못하였다.
2월 몇몇 언론에는 정신대로 끌려갔던 한 자매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일제에 속아 정신대로 끌려가서 뒤틀린 삶을 살았던 자매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1945년 해방 이후 고국에 돌아와 겪은 냉대와 차별이다.
이들은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일본인 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했지만 민족의 이름을 더럽혔다고 멸시를 받았다. 자매 중 한 명은 결혼 후 이 사실이 밝혀져 남편의 구타와 폭력에 시달렸으며 자식들에게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누가 피해자인 그녀를 죄인으로 만든 것일까?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에 항상 노출된다.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전쟁 기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상대국의 여성에 대한 대규모 성폭력이 자행되고, 남성 중심의 순혈주의 담론 속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은 생존자로서 존중되기보다 ‘민족, 종족의 이름을 더럽힌’ 것으로 규정되어 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욕 중 하나인 ‘화냥년’은 고려 시대 몽고와의 전쟁 과정에서 몽고에 끌려간 여성들이 돌아왔지만 도리어 몸을 더럽혔다며 등장한 언어 이다. 고려시대 몽고와의 전쟁 중에 끌려간 여성들의 삶과 일제 강점기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삶이 내게는 하나로 겹쳐진다.
수요 집회에서 보았던 할머니들의 한 맺힌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일본에 대한 분노뿐만이 아니라 같이 보듬지는 못할망정 자신들을 핍박했던 사람들에 대한 또 다른 서러움이 느껴졌다. 당장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피해 여성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수요 집회가 계속되었고, 벌써 900회를 넘었지만 아직 어떠한 진전도 없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새로 들어선 일본 하토야마 연립정권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타결을 요구하는 50만 명 서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법적 배상과 재발방지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가 잊어버리고 도리어 차별하였던 문제를 바로 잡을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문제라는 걸 3.1절과 함께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서명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홈페이지(http://www.womenandwar.net)에서 할 수 있다.
덧붙임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