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사회단체협의회’ 발족, 진상규명운동 본격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위해 전국의 인권·사회단체들이 나선다. 20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광주인권운동센터, 새사회연대 등 26개 단체들은 오는 29일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사회단체협의회」(아래 협의회)를 발족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이는 지난 3월 19일 4개 단체로 첫 모임을 가진 후 지금까지 8차례에 걸쳐 준비회의를 한 결과다. 준비회의의 '조정책임자'였던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영일 소장은 "(참가단체들은) 초기에 민간인학살 문제에 대한 인권적 의식이 부재했지만 8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이것이 남한사회 인권운동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다"라고 밝혔다. 이 소장은 특히 "수도권과 지역단체들이 동시에 민간인학살 문제에 주체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에서 민간인학살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92년 지역의 유족들이 유족회를 결성하고 사회적으로 발언하면서부터다. 그러다가 2000년 2월 제주인권학술회의에서 몇몇 학자들이 민간인학살 문제를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제기하면서, 같은 해 6월과 9월 '전국 민간인학살 유족협의회'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공동대표 이해동 등, 아래 범국민위)가 각각 결성된다. 그리고 2001년 9월 6일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아래 통합특별법)이 발의돼, 진상규명 운동은 활기를 띄게 된다.
사실 그 전까지는 거창 신원리 학살 사건, 제주 4·3사건 등 개별적인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런데 이런 개별입법의 형태로는 한국전쟁전후 전국에 걸쳐 일어난 민간인학살 사건들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범국민위는 모든 사건들을 통합해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작업을 벌이기 위해 통합특별법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통합특별법은 국회에 계류된 지 1년이 가까워 오도록 소관 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에 협의회는 29일 발족을 기점으로 매주 목요일 서명전 및 선전전을 진행하며 통합특별법 제정 촉구운동을 전개한다. 9월 정기국회 때 통합특별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결의다. 또한 민간인학살 문제를 사회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피학살지 역사순례' 및 '2003 유족증언대회'를 지금부터 기획하기로 했다. 이영일 소장은 "유족들은 사회적인 냉대와 사회단체의 무관심 속에 (진상이 규명되길) 50년 동안 기다려 오면서 지쳐있지만, 협의회 발족에 크게 고무돼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제시대 친일세력들이 미군정 시기 친미세력이 되어 미국의 반공 주장을 등에 업고 애국자가 되는 한국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민간인학살은 일어났다. 이들은 그 후 이 땅의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기득권으로 자리잡으며, 70년대 베트남 민간인학살, 80년 광주학살 등을 반복한다. 따라서 '친미=반공=애국'이라는 등식의 논리를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폭력과 집단학살은 언제나 재발할 위험을 안고 있다. "남한사회의 인권운동의 본질은 민간인학살에서 비롯된다"라는 이 소장의 주장은 협의회 발족의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