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가을 - "내가 갈비 살게! 오늘 한 번만 내가 살래. 내가 오늘 돈 있으니까..." 두레방(기지촌여성 인권상담소/경기도 의정부 소재)에서 미술심리치료를 하고있는 박인순 씨의 기분이 매우 좋다. 두레방에서 그린 그림을 엽서로 제작했는데, 판매 수익의 일부를 받은 것이다. "언니 필요할 때 쓰세요. 올 때마다 고구마, 부침개 그런 거 가져오시면서..." 두레방 식구들이 만류하지만 인순 씨 마음은 갈비집에서 한번 근사하게 '쏘고' 싶다. 떳떳하게 번 돈으로 기분 한번 내보고 싶은 것이다. 인순 씨에게 오늘 같은 날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 2002년 장대비가 내리던 여름 - "비오는 날은 (술을) 아무리 먹어도 (시간이) 가질 않아. 소주 한두 병으론 잠이 안 와. 그래서 먹는 거야." 인순 씨는 알코올중독이다. "언니, 이러시면 안돼요. 술 그만 먹어요. 지금도 많이 먹었는데..." 두레방 활동가는 이러는 인순 씨가 너무 속상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돈이 어디서 나서 술을 먹어요? 아저씨들이 2만원, 3만원 주면 산에 가서...언니 몸을..." 나물 팔아 벌이를 하고 있는 인순 씨는 항상 가난하다. 그래서 가끔 성매매를 했다. 물론 모두 술로 허비해 버렸지만. 그런 인순 씨를 지적하자 더욱 참담해진다. 부끄럽고 서러운 인순 씨는 눈물을 보이고 만다. "너는 술을 안 배워서 술이 안 먹고 싶은 거야! 나는 술이 너무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 그래서 그러는 거야." "가면을 쓰기 싫어. 난 얼굴 가면 쓰기 싫어." 우산을 받쳐들고 집으로 향하는 인순 씨. 그녀의 아픔이 빗물과 뒤범벅 돼 캠프 스탠리로 스멀스멀 기어 들어가는 것만 같다.
# 1980년 즈음 - "대머리가 대통령 할 때 돌아왔어." 인순 씨는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갔었다. 남편은 알코올중독이었고 그녀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폭행을 일삼았다. "바람나서 나한테 병도 옮기고 살 수가 없었어." 결국 그녀는 두 아이를 미국에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내가 딸한테 5백달러 줬어. 그것도 시엄마가 다 썼지만. 그래도 시엄마는 나를 항상 반겨줬지. 그거 하나 좋았어." 미국에서 돌아온 후 인순 씨는 술 없이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 1963년 허기진 어느 날 - "일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쳤어. 배고프고 힘들어서 여기로 왔어. 박정희 때였는데 처음이 파주 용주골이었어. 소개소에서 1만5천원에 팔려왔어. 그렇게 된 거야." 1945년에 태어난 인순 씨는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게 된다. 전쟁고아인 인순 씨를 받아주었던 절에선 힘들고 배고파서 살 수 없었다. 18살에 도망 나와 직업소개소를 통해 성매매를 하게 됐다. 가난을 피해 도망나온 인순 씨를 기다린 것은 더 큰 가난과 성노예의 생활이었던 것이다.
얼마전 시사회를 가진 다큐멘터리 <나와 부엉이>의 주인공 박인순 씨의 50여년 세월이다. 이제는 인순 씨에게 그 가을에 맛본 떳떳함만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김정아 씨는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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