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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광화문 가득 메운 전쟁 중단 목소리


미국이 기어이 이라크 침공을 개시했다. '설마 설마...' 했던 일이 현실화되자 사람들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하루 내내 참혹한 학살전을 개시한 미국을 강력히 규탄했다.

공습이 시작된 지 한 시간 후, 미 대사관 앞으로 달려나온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 지원연대'는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최첨단 무기에 무력하게 노출된 대상은 후세인이 아닌 이라크 민중들"이라며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의 양심은 결코 학살에 불과한 군사적 폭력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곧이어 같은 장소에서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과 여중생 범대위 등 인권·사회단체들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독재자 후세인을 오랫동안 지원해 온 미국이 이제는 자국의 패권 과시와 중동의 석유 장악을 위해 이라크의 무장 해제와 민주화라는 구실을 내세워 전쟁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녹색연합의 김제남 사무처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나 정부의 파병 방침에 대한 항의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외통부 장관은 "반전 여론은 부담스럽다.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빨리 제출할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답변만 내놓았을 뿐 철회의 뜻은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인권·사회단체 활동가 1백여명은 이후 미대사관 앞에 자리를 잡고 오후 5시 30분까지 연좌 농성을 계속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최인순 집행위원장은 "걸프전으로 인해 이라크 어린이 4명 중 1명이 기형아로 태어나고 있다"며 전쟁의 참혹함을 지적하는 한편, "한국 정부의 파병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인권위원장 이덕우 변호사는 "파병에 동의하는 국회의원들은 자기 자식부터 이라크에 보내라"고 요구하고, "만약 파병을 강행할 경우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전쟁범죄자로 기소돼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녁 7시가 되자, 촛불시위가 열린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는 3천여명의 시민들이 몰려나와 전쟁 중단 촉구의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자신을 주부라고 소개한 한 참가자는 직접 만든 피켓을 목에 걸고 "전쟁으로 어린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볼 때 무력감을 느꼈다"며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침묵해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대학생 주애니 씨는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 가슴이 아파 수업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울먹였다. 일이 손에 안 잡혀 업무가 끝나자마자 달려나온 회사원,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어린이, 선생님과 함께 나온 학생 등 교보문고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로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촛불시위는 시간이 갈수록 열기를 더해갔다.

밤 10시 무렵에서야 끝난 촛불시위에서 참가자들은 오는 22일 오후 4시 종묘공원에서 열리는 반전집회로 다시 모일 것을 약속했다.

한편, 같은 날 오후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전쟁과 인권'을 주제로 한 포럼을 개최, 현재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이라크전쟁의 배경을 짚어보고 현 시기 인권운동의 과제를 모색했다.

평화인권연대 손상열 활동가는 "미국의 군사전략은 최근 현실적 위협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이 규정한 불량국가들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예방전쟁을 적극 구사하는 전략으로 수정"됐으며, "이라크 공격은 이러한 군사전략을 현실화하기 위한 미국의 장기 플랜의 첫 단추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손 활동가는 "미국은 자본의 세계화를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는 조건들, 즉 금융·상업네트워크와 에너지 수급체계의 안정적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결국 이라크를 공격한 이유는 세계화의 강행을 위한 전지구적 군사연계망을 구축하는 한편, 중동과 카스피해 지역의 에너지자원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미국의 예방전쟁 전략에 따르면, '이라크 다음은 한반도'라는 시나리오는 매우 큰 설득력을 얻는다. 이에 따라 포럼 참가자들은 이후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더욱 넓혀갈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또 이날 포럼에서는 현 시기 인권운동은 우리 사회에 내면화된 군사주의와 성차별주의에 대한 적극적 반대를 조직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를 통해 폭력과 학살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평화운동을 조직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포럼이 끝난 후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한국정부의 전쟁지원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도 채택됐다. 또 향후 인권활동가들은 반전평화운동에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단위를 신설하기로 의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