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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59차 유엔인권위원회 소식 ③

노무현 '참여정부'의 '인권' 없는 '인권외교'


지난 토요일자에 실려야 할 유엔인권위 소식을 필자 사정으로 오늘 싣습니다. <편집자주>


노무현 참여정부에게는 과연 '인권외교'의 철학과 정책이 있는가? 59차 유엔인권위에서 한국정부의 구두 발언을 들으면서 떠오른 근본적인 질문이다.

한국정부는 회의 개막 후 지금까지 인종차별(의제항목6), 발전권(항목5), 나라별 인권상황(항목9), 시민·정치적 권리(항목11) 등 네 가지 주제에 관해 구두 발언을 했다. 양적으로 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참여'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부실공사'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결론적으로 한국정부의 발언에는 인권의 기본 원칙에 기반한 철학과 정책차원의 일관성과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른바 '국익'을 앞세운 통상외교와 눈치보기 외교에 인권이 뒷전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국내 인종문제 전혀 언급 안해

한국정부의 첫 발언은 지난 3월 24일 인종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발언이 그렇듯, 이 발언도 상당 부분이 인종차별철폐 관련 인권의 기본 원칙과 이미 제출된 인종주의 관련 유엔 보고서를 요약하는 데 할애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2001년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종주의 퇴치와 관련된 활동을 간단히 소개했다.

현재 인종차별철폐조약 민간단체 반박보고서를 준비중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김기연 국제연대 간사는 이 발언문을 검토한 후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 차별이나 지나치게 까다로운 난민지위 부여 기준 등 한국 내 인종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 없다"며 "도대체 관점도 내용도 없는 이런 하나마나한 발언을 왜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발언은 "국내 인권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듣기 좋은 교과서적 원론만을 나열한 것"이라는 비판이다.

사실 한국정부는 지난 2001년 더번에서 열린 유엔인종차별철폐회의(WCAR)를 "세계공동체가 인종주의와 싸워나가는 데 필요한 지침을 제공하고 연대의식을 촉진하는 데 시의적절하고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더번 회의에서 채택된 행동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정부는 이 행동계획의 핵심 권고사항인 국가적 차원의 구체적 행동계획(National Action Plan)을 지금까지 수립한 바 없고 수립하고자 시도한 적도 없다.

게다가 한국정부는 한국 상황에서 인종차별철폐와 중요한 관련을 지닌 이주노동자협약 가입을 온갖 핑계를 대며 지금까지 미루고 있다. 한국정부는 지난해 국제형사재판소를 만들기 위한 로마협약을 초대 한국인 재판관을 배출하겠다는 '국익'차원에서 서둘러 서명·비준했다. 그러나 국내 거주 수십만 이주노동자와 일본 등 해외파견 한국인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이 인권협약은 '이권'에 밀려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 협약은 노무현 '참여정부'의 참여 없이 올 7월에 발효될 예정이다.


한국정부, 발전권이 뭔지나 아나

3월 26일에 있었던 발전권에 관한 발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어 드러났고, 심지어 반인권적 내용까지 포함되기도 했다. 발전권은 경제 강대국과 약소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이다. 전자가 발전권을 고사시켜 인권의 목록에서 제거하거나 그 중요성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데 반해, 후자는 발전권의 강화를 통해 불공정한 국제경제환경을 개선하려 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한국정부는 남북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이 문제에 대해 "국내적 노력과 국제적 협력 양자를 통한 균형있고 종합적인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타협, 협력 및 이해의 정신을 가지고 이 문제를 계속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은 경제성장과 민주개혁을 동시에 이룩함으로써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경험을 돌이켜볼 때 "국제공동체의 협력 이외에도 법치, 민주주의, 모범적인 공치(good governance) 등 개별 국가의 책임을 이행하고자 하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겉으로는 중립의 명분을 취하는 것이지만, 뒤집어 보면 한국정부가 발전권 문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역량도 의지도 없음을 보여준다.

한국정부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한 인권전문가는 "최근 유엔 안팎에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경제 세계화가 인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요지의 인권보고서가 많이 제출되고 있"는데도 "한국정부는 인권이 아닌 세계은행과 IMF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IMF 경제위기와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인권침해가 있었고 인권, 특히 경제·사회적 권리의 후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여전히 그러한 현실을 단순히 경제문제로만 볼 뿐 인권문제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정부의 입장은 한국정부가 지난 2001년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한국정부의 보고서를 심의한 후 내린 권고문을 여전히 무시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또 한국정부의 '자랑'과는 달리 한국의 발전모델이 인권의 관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은 지난해 아동권리위원회도 지적한 바 있다.


인권전문가 없는 인권외교 주무부처

한 인권전문가는 "이러한 문제는 유엔 인권위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에 인권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인권 마인드가 없거나 부족한 통상전문가나 일반 외교전문가가 인권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인권이 항상 통상외교의 장애 아니면 장식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의 당당함은 사라지고 통상외교의 수단으로 주고받기 또는 바꿔치기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지금까지의 발언을 볼 때 현 참여정부에서도 이러한 현실이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라별 인권상황과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한국정부의 구두 발언에 대해서는 다음 유엔인권위 소식에서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