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아동권 이행기구 마련 공청회 개최해
지난 1월말 아동권리협약의 국내이행을 감시․조정하기 위한 기구의 설립 계획을 발표한 이래 이 기구의 설립을 일방적으로 추진, 아동관련 민간단체들의 비판을 받아왔던 보건복지부가 민간단체들의 요구에 못 이겨 23일 공청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이날 공청회에서도 또다시 참석자들의 반론에 부딪혀 기구의 설립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23일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가칭)국가아동권리위원회 설치․운영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정부가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지 11년 만에 처음으로 아동권 이행 기구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만큼 환영과 기대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로 또다시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드러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박경서 상임위원은 "정부가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유엔회의에 참석했고 후속 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기구가 만들어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벤트로 성급하게 추진되는 것은 반대한다"는 말로 축사를 대신했다. 지난 2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이양희 교수(성균관대 아동학)도 "아동권 기구가 한시적이거나 전시용으로 추진돼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며 "우리 특성에 맞는 제대로 된 기구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제 발표를 맡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문희 부연구위원은 아동권 이행기구를 △대통령 직속 △민간 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내부 △행정 부처 내부 등에 설치하는 방안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 대부분은 "아동권리협약 이행기구는 정부의 아동 정책을 감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인 만큼 독립성과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기구여야 한다"고 강조해 기구의 설립원칙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 김선민 인권연구담당관은 "정부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아동정책을 직접 수행하는 집행기관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진 기구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류은숙 상임활동가도 "아동관련 정책이 각 부서에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 보건복지부 산하에 기구를 만든다면 실효성 있는 기구가 될 수 있겠느냐"며 "국가인권위원회가 같은 독립적 기구로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국무총리 산하에 충분한 권한을 가진 기구로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찬진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모든 법이 아동을 권리 주체라기보다는 보호․관리의 객체로 간주하고 있다"며 "아동관련 법제에 대한 모니터링 등 입법 조정 권한을 법률상 부여받은 아동권 이행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가정․아동복지과의 김학기 사무관은 보건복지부의 구체적 계획을 밝히지는 않으면서 다만 "모든 의견을 수렴해 실현 가능한 안으로 만들겠다"는 말로 논의 내용을 대신했다. 하지만, 공청회에서 지적된 것처럼 충분한 독립성과 실효성을 가진 제대로 된 아동권 이행 기구가 만들어질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