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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59차 유엔인권위가 남긴 과제 (하) - 이성훈 팍스 로마나 사무국장

'참여정부' 인권외교,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비엔나 세계인권회의 10주년인 올해는 한국의 인권외교 10주년이다. 한국은 93년부터 지금까지 유엔인권위 위원국 지위를 유지해왔다. 여기에는 '문민정부'의 등장 이후 점진적으로 발전해온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위상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그러나 올해 인권위에서 드러났듯이 한국의 인권외교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를 못 벗어나고 있다.

유엔에서의 인권외교는 국내화와 세계화의 쌍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유엔 인권기준과 제도를 국내의 인권향상을 위해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라는 국내화와 '국내의 인권개선을 토대로 어떻게 국제적인 인권향상에 기여할 것인가'라는 세계화가 바로 그것이다. 한편 한국의 인권외교를 현실정치의 관성에서 벗어난, 보편적인 인권의 원칙에 입각한 것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제는 시스템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차원의 문제이다. 쌍방향 접근은 이 과정에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시스템 업그레이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 측면에서 동시 접근해야 한다. 하드웨어가 구조와 제도라면, 소프트웨어는 문화와 사람이다. 제도개선과 인력 양성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인권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인프라 육성을 위한 집중적인 투자를 시작해야 하며, 아래는 이를 위한 가이드 라인이다.


1. 중장기적 국가행동계획 수립

무엇보다 인권선진국의 비전, 과제, 전략을 담은 청사진이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인 아동, 여성, 장애우,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에 대한 5대차별 개선방안도 당연히 종합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인권선진국의 주춧돌을 놓는 이 건축설계도 작성 작업은 일부 부처의 이기주의와 밥그릇 다툼이 아닌, 체계적이고 투명한 국민참여의 상향식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는 모든 정부 관련부처뿐만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 학계, 시민사회, 특히 인권단체의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외국의 모범사례를 참조하고 유엔 인권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면 더욱 바람직하다.


2. 유엔 인권기준과 제도의 적극적 활용

인권은 법과 정치의 두 바퀴로 발전해간다. 인권이 '정치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내가 아닌 유엔이 설정한 국제인권기준과 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유엔의 인권관련 특별보고관에 대한 '상시초청장'을 하루 빨리 제출해 이들의 지원과 자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가행동계획 수립 과정에는 지금까지 유엔의 6대 인권조약위원회가 한국정부에 제시한 권고 내용의 국내적 실현 방안도 구체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또 하루빨리 국제인권조약 비준시 유보했던 조항들을 철회해야 한다.


3. 인권전문 외교관의 양성

인권외교의 쌍방향 전략을 위해서는 국내외 인권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지식과 인권감수성으로 무장된 인권전문 외교관의 양성이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외교통상부에는 인권전문가로 인정받는 외교관이 거의 없다. 지금까지는 일반 외교·통상업무를 하다 자리가 없거나 순환보직 원칙에 따라 발령이 나면 인권업무를 다루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인권위 위원국 경력 10년이 되도록 한국정부는 자체의 힘으로 내용 있는 결의안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제는 준비된 외교관에게 인권외교의 임무를 맡겨야 한다.


4. 인권외교에 국민참여의 제도화

'참여정부'의 국민참여 원칙은 인권외교 분야에도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 앞으로 정부는 인권위 전후로 국가인권위, 인권단체, 인권학자를 초청하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간담회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간담회를 통해 인권의 가치와 원칙에 따른 국익이 무엇인지, 한국이 세계인권 향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관한 토론이 활성화돼야 한다. 인권위 전후로 자국뿐 아니라 국제 인권단체를 적극 초청하여 의견을 듣고 협력을 구하는 것은 '인권선진국'으로 알려진 유럽에선 당연한 일로 자리잡았다.


5. 유엔인권기구 진출 한국 위원 공청회

유엔인권기구 공직에 출마하는 한국인 후보자에 대한 공청회도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른바 '다면평가제'를 실시하여 좁은 의미의 국익이 아닌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해야 한다. 그 동안 검증절차 없이 정치적 고려에 의해 추천된 한국 위원에 대한 국제인권단체의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당사자뿐 아니라 이들을 추천한 한국정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


6. 청와대에 인권전담 비서관 신설

인권외교는 성격상 여러 정부부처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이다. 지금까지 인권외교는 외교통상부 인권사회과에서 실무적 차원에서 다루어왔고, 중요한 사안은 '관계기관대책회의'나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직접 다루어왔다.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고, 힘있는 기관은 인권에 대한 인식이 낮거나 왜곡된 인권관을 가지고 인권문제를 다룬다. 정부 내에서 상대적으로 인권외교에 진보적 입장을 갖고 있다고 알려진 외교통상부도 여전히 인권을 국익, 즉 안보와 통상 이익에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관행에서 크게 못 벗어나고 있다.

이는 구시대적 발상이고 '참여정부'의 철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제는 보편적 인권의 실현이야말로 세계화 시대 국익의 핵심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정치경제 안보는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기여할 때 의미있고, 인권은 그러한 참된 정치경제 안보를 튼튼히 하는 안전장치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대통령의 결단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개혁을 요구한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참여정부'의 철학을 반영하는 국가행동계획 사업을 추진, 감독, 조정할 인권전담 (수석)비서관을 청와대 내에 신설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 하에서 실험적인 성격을 지녔던 인권대사제도를 강화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