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최초의 정리해고, 조합원 블랙리스트 작성 등으로 문제가 됐던 흥국생명이 또다시 노동조합은 물론 노조간부 14명에 대해서까지 업무방해금지 가처분과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노조파괴공작이 현실화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5년간 흥국생명은 지속적인 정리해고를 단행, 3400명에 이르던 직원수가 현재는 9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2년간은 임금마저 동결된 상태다. 노조는 41.1%의 임금인상과 특별상여금을 지급하고, 추가 구조조정이 없도록 고용안정을 보장해 줄 것을 회사측에 요구해 왔다. 하지만 사측은 총 21.25%의 임금인상안만 고수한 채, 고용안정에 관해서도 확답을 피해 왔다. 이에 노조는 지난달 23일 파업에 들어갔고 아직까지 협상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사측은 서울지방노동청의 조정안조차 거부하고 있으며, 지난 4일에는 노조와 노조간부들을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다. 건물주인 태광산업(대표이사 이호진, 흥국생명 계열사)을 내세워 노조와 14명의 노조간부에 대해 사실상 일체의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이를 어길 시 매 1회당 390만원의 손해배상을 받도록 법원에 청구한 것.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노조는 집회를 할 때마다 총 6천여 만원을 배상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와 같은 손해배상과 가압류 청구가 노동기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신종 노조탄압수단이라는 데는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실제로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는 손배·가압류 조치에 항거해 목숨을 끊었고, 이후 두산중공업 노조간부에 취해졌던 손배·가압류는 노동부장관의 중재로 취하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노동현장에서는 손배·가압류가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흥국생명의 의도된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일환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사측은 다른 사업장의 노조파괴 성공사례를 분석하고, 노조간부의 재산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신용정보회사에 용역을 의뢰하도록 법무팀에 지시한 것으로 돼 있다. 또 정리해고 방침을 세우고 총파업 등 노조의 강경 투쟁을 유발한 뒤 불법행위를 찾아내 노조간부에 대해 손배·가압류 조치를 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하지만 사측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야기라고 발뺌하고 있다.
이형철 전국생명보험노동조합 흥국생명지부 부위원장은 "흥국생명이야말로 교섭을 회피하며 노조탄압으로 일관, 파업을 장기화시켜 태광산업 사옥 내 업무방해를 조장하고 있다"며 "서울지방노동청의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흥국생명은 부당노동행위 자행 및 파업장기화 유도 사태를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조 및 노조간부 14명에 대한 업무방해금지 및 손해배상 관련 심문은 13일 오후 3시 서초법원 358호 법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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