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을 마치 진실인 양 계획적으로 공표해 송두율 교수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그를 거물 간첩으로 '만들어온' 정형근 의원과 박정삼 국가정보원 제2차장 등이 검찰에 고발됐다.
'송두율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27일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하며 피의사실을 계획적으로 공표해 온 핵심 3인방을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제126조)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김세균 교수(서울대 정치학)를 비롯한 745명에 의해 고발된 3인은 박정삼 국가정보원 제2차장, 정형근 의원(한나라당), 박만 서울지검 제1차장 검사다.
고발장에 따르면, 정형근 의원은 지난 9월 30일 박정삼 국정원 제2차장으로부터 수사내용을 보고받고 관련 자료를 제시받은 뒤, 당시 국정원이 준비중이던 기자회견을 취소하도록 하는 대신 10월 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진행된 국정원 감사 때 가진 중간 브리핑과 기자간담회를 통해 송 교수가 "북한의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등의 피의사실을 계획적으로 공표했다.
이에 대해 고발인들은 "국회 정보위원으로서 감사대상기관이 국가정보원 핵심간부인 박정삼과 결탁하여 의도적으로 피의사실을 기자들에게 공표"한 것은 "형사피의자인 송 교수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한 채 자신의 영달과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며 강력 비난했다.
또 박정삼 국정원 제2차장은 지난달 2일 송 교수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점을 해명하자, 바로 이튿날인 3일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들을 식사자리에 '초청'해 "송두율이 노동당에 가입했고 정치국 후보위원 23위 김철수라는 자백을 받았다"는 등의 피의사실을 알려 언론에 대서특필되게 함으로써 송교수의 도덕성과 진실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고 고발인들은 주장했다.
또한 박만 검사는 송 교수가 검찰에 송치된 그 이튿날인 10월 2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연일 기자브리핑을 열고 피의사실을 공표했을 뿐만 아니라, 송 교수가 반성을 하지 않아 구속한다는 내용까지 브리핑하여 "공공연하게 송교수에게 자백의 압력을 가"하기까지 했다.
고발인들은 "분단으로 인한 대결의 기억이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 사건의 피의사실이 공표될 경우, 피의자는 제대로 항변조차 하기 전에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여론재판을 받고 일반인들은 피의사실이 유죄인 양 인식하게 된다"면서 이로 인해 송 교수가 받은 고통은 그의 주장이 진실로 밝혀진다 해도 결코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며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송 교수 변호인단 가운데 하나인 송호창 변호사는 "형사법을 집행하는 수사기관이 형사법을 공공연하게 위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야만이고, 언론이 부화뇌동하여 호흡을 맞추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향후 피고인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 진술이 미리 공표되면 재판과정의 공정성이 어떻게 담보될 수 있겠냐"고 되물으며 "이는 재판절차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또 "이번을 계기로 피의사실을 공공연히 공표하는 수사관행을 일소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박만 검사는 지난 19일 송 교수를 구속 기소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송 교수가 "아직도 김일성을 존경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송 교수 발언의 진의를 왜곡, 전달해 '색깔 덧씌우기'라는 비난을 산 바 있다. 당시 수사과정에 입회했던 송 변호사에 따르면, 송 교수는 김일성을 존경하느냐는 수사관의 반복적인 질문에 "역사적인 인물이고 한 시대의 정치인으로서 적극 평가한다"고 답변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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