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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죽은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한다?

인권활동가들, 노 대통령 축사에 항의 침묵시위

"한국에서 세계인권선언은 죽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아래 '선언')의 탄생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인권활동가들이 '선언'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1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세계인권선언 55주년 기념식에 노무현 대통령이 축사차 참석했다. 오후 3시경 대통령이 연단에 오르자, 평화인권연대, 장애인이동권연대 등 '노동기본권 탄압 중단 및 이라크 파병철회를 촉구하는 인권단체' 소속 인권활동가 15명이 좌석 중앙에 앉아 있다 일제히 일어섰다. 이들은 "근조 인권"에다 △이라크 파병계획 철회 △테러방지법 제정 철회 △집시법 개악 중단 △노동인권 보장 △부안 경찰폭력 책임자 처벌 등 요구사항을 덧붙인 손수건을 펼쳐들고 침묵 항의시위를 벌였다.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청와대 경호원들이 손수건을 빼앗으며 몸싸움을 벌이는 등 제지에 나섰으나, 시위는 축사가 끝날 때까지 20여분 동안 계속됐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준비된 원고 대신 즉석연설을 시작해 "몇 분들이 제게 호소하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면서 "국가가 (경쟁사회에서 불리한 여건에 처한 약자를) 돕고 해결해 줘야 인권국가지 인권의 사각지대를 구경만 하는 것이 인권국가냐,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내 말보다는 저의 실천이 모자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하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말고 가자"면서 달래기에 급급했다.

평화인권연대 손상열 상임활동가는 "오늘의 시위는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지없이 파괴되고 있는 이 땅의 인권현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산적한 인권문제를 나서서 해결해야 할 대통령이 공권력을 앞세워 묵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범용 상임활동가는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인권을 철저히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야지 시종일관 어려운 문제니까 이해해 달라는 식이었다"고 꼬집었다.

이날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단원 5명도 노 대통령 도착시각에 맞춰 세종문화회관 주위에 늘어서 "인권을 죽여 국권을 세우랴?", "이라크에 우리 군인들을 보내지 마세요"라고 쓴 피켓을 들고 각각 1인 시위를 벌였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서 '선언'의 각 조항이 하나씩 낭독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와중에도 행사장 인근 감리교회관에서 단속추방에 저항해 농성을 벌이던 이주노동자 150여명 중 13명이 연행돼 "비판하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말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케 했다. 이들은 지난달 14일부터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서 25일간 농성하다 지난 9일 상경, 감리교회관이 입주한 동화면세점 건물 현관에서 이날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다 건물 뒷문으로 들어온 사복경찰과 출입국관리소 직원 40여명에 의해 강제 연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