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박태순 사건 등 6건의 실종사건 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하면서, 경찰의 비협조로 진상조사가 가로막힌 사례를 공개하고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했다.
의문사위에 따르면, 92년 8월 일하던 공장에서 퇴근 중 행방불명된 박태순 씨 사건의 경우 박 씨의 노동운동 동료에 대한 경찰의 공작색인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구체적인 공작 내용과 박 씨의 내사자료의 열람조차 거부당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청 모 과장은 공식회의 자리에서조차 "보안과 문서고는 국가안보와 관련되어 있어서 누가 방문하여도 열어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또 유신철폐 운동을 하다 76년 11월 실종된 경북대 의대생 심오석 씨 사건도 의문사위가 모 경찰청 문서고를 열람하다 관련 파일을 발견했으나 상급청의 공개 거부로 조사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 김희수 상임위원은 "경찰서 자료 목록을 조사하다 진상 규명에 중요한 역할을 할 자료의 존재를 확인하고 특정 자료를 요청했는데도 경찰이 거부했다"며 "과거 국가기관의 오류를 밝히기 위해서 먼저 나서야 할 국가기관에서조차 협조를 해주지 않는 것이 의문사위가 처한 현실"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현행 의문사특별법 제4조는 위원회로부터 필요한 자료제출 및 사실조회 등 협조를 요청받은 국가기관 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관련 기관이 이를 거부할 경우 위원회가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의문사위가 요구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동행명령을 거부할 경우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실질적인 진상규명 작업을 보장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지난해 11월 오세훈(한나라당) 의원이 이런 내용을 담은 의문사특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 법안은 또 대부분의 의문사가 공권력에 의해 발생·은폐돼 진상규명이 대단히 어렵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현실을 고려해 조사기간 제한 규정을 삭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조차 정해지지 못한 채 지금껏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5일 국회 법사위는 의문사위 예산이 행정자치위 소관인 만큼 자신이 소관 상임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 법안을 국회의장에게 반려했다. 26일 이 법안은 다시 법사위에 회부됐으나 31일 같은 이유로 반려됐다. 국회법 제37조는 소관 상임위가 정해지지 않은 법안은 국회의장이 국회운영위원회와 협의해서 상임위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 또한 처리 일정이 나와 있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 법안이 4월 총선 전까지 처리되지 못해 자동 폐기되면, 의문사위 활동도 중단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 유한범 대외협력홍보팀장은 "개정안이 통과 못하면 조사시한인 올해 6월이 되면 진상규명 여부와는 상관없이 모든 조사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며 "의문사위는 가해자로 의심되는 국가기관을 제대로 조사할 기회도 가져보지 못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될 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 대책위와 군사상자 유가족연대, 추모연대 등은 의문사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노숙농성을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지난달 26일부터 12일째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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