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파병 계획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인권단체들이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 이라크 파병철회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23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평화인권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20여개 인권단체는 정부의 파병 강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관련해 인권위의 조속한 입장표명을 요구하며 김창국 위원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김창국 위원장에게 "이번 사태는 매우 중요한 인권현안에 대해 국가의 인권 원칙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인권위가 파병 및 철군에 대해 인권적인 시각에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강기택 변호사도 "김선일 씨 사망은 민간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정부의 정책이 민간인을 희생시킨 '정책살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전쟁과 테러의 악순환에 빠지려하는 지금, 독립기구인 인권위가 행정부, 입법부 등에 파병철회의 입장을 전달하여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양 국민에 대한 학살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고 상황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창국 위원장은 "개인적으로는 파병을 반대하지만 인권위가 전원위원회 합의 기구이므로 통일된 입장을 내기가 쉽지 않다"며 "국회의원들이 인권위법을 들어 파병 사안은 인권위의 권한을 넘는다고 견제를 하는 것이 큰 걸림돌이며 예산 삭감의 위험도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법 조항을 문제삼는 것은 인권위법과 권한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는 게 인권단체의 주장이다. 국가기관의 인권침해를 견제하기 위해 독립적 지위를 갖는 인권위가 반인권적 전쟁과 파병에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는 것.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활동가는 "인권위는 파병과 같은 사안에 대해 개입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독립기구가 아니냐"며 "예산 걱정이나 사소한 법 권한 규정을 넘어서 파병 철회 입장을 강하게 표명할 것을 국민이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3월 미국의 이라크 침략 당시 정부와 국회에 '이라크 전쟁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인권위의 입장이 '파병반대'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정부와 국회에 '신중히 판단할 것'을 지적하면서 '파병반대'로 입장이 이해됐다. 그러나 독립적 국가기구인 인권위에 대한 정치권의 몰이해로 여야의 비난에 시달리면 실제로 한국군의 파병이나 이라크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해서 인권위는 줄곧 침묵을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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