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군 파병'이라는 선물을 미국에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세계 각국에 미국의 이라크 재건 부담을 분담시키기 위한 결의안이 극적으로 통과됐다. 곧이어 안보리 결의안까지 채택된 마당에 파병 결정을 미룰 명분이 없다는 등 파병 여부의 조기 결정을 압박하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8일 오전 대통령 주재로 이라크 결의안 채택과 관련한 정부의 대응방침을 논의하게 될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번 이라크 결의안이 세계 각국에 미국이 파병 압력의 수위를 높이는 구실로도, 우리 정부가 추가 파병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도 결코 사용될 수 없음을 거듭 분명히 하고자 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침략전쟁'이 갑자기 '정의로운 전쟁'이 되는 것도 아니요, 이라크에 파병될 한국군이 '침략군'에서 '해방군'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더구나 이번 결의안은 미국의 일정한 양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침략전쟁을 추인해 준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결의안에 따라 구성될 다국적군은 여전히 침략군인 미군이 이끌게 된다. 이라크의 주권을 언제 제 주인에게 돌려줄 것인지, 다국적군의 군정 종식이 언제까지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결의안은 침묵하고 있다. 유엔의 역할을 강화한다지만 구체적 계획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와 프랑스, 독일이 파병과 재정지원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이라크 전쟁의 원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대규모 파병 압박을 받아온 파키스탄이 결의안 통과 직후 '미국의 점령은 계속해서 폭력을 불러올 것'이라며 파병 거부 의사를 확실히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미국을 도우러 온 군대도 점령군"이라는 이라크인들의 정당한 분노에 주목해야 한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미군의 무차별 총격과 마구잡이 연행, 식량과 의약품 부족으로 울부짖고 있는 이라크인들의 얼굴을 기억해야 한다. 이라크에 군대를 더 보낼 것이 아니라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
- 2437호
- 2003-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