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빈곤과 관련한 토론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빈곤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빈곤아동 대책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한 경제학자는 말한다. “빈곤아동에 대한 대책은 필요하나, 투여하는 재정에 대한 효율성과 경제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어린이날 즈음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금 빈곤아동에게 재정을 투여하는 것이 이후에 그 아이들이 커서 범죄자가 된 후 대책마련에 드는 재정보다 훨씬 적게 들기 때문에 효과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한 위원회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까지 제시했다. 3~4세 유아에 대한 투자는 사후적 대책보다 7.16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범죄예방 등 사회비용 절감과 세금수입, 성인에 대한 사회복지 서비스 절감 효과 등이 들어간다.
빈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여러 대책들을 내놓고 있으며 이에 대한 언론과 재계 등의 입장도 다양하게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대책의 세부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나면 일맥상통하는 것은 빈곤계층에 대한 관리와 이에 투여하는 재정에 대한 효율성과 경제성이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정부관계자는 노숙인 대책에 대해 잘라 말한다.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을 위해 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해야 하냐”고.
빈곤은 단지 사회현상 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유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가 폭력이다. 모든 사람은 인간존엄성을 지니며,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적절한 주거를 가질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일할 권리,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공정한 임금과 복지, 의료․물․전기 등 필수서비스를 차별 없이 누릴 권리 그리고 정치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 등은 인간존엄으로부터 나오는 기본적인 인권이다.
그런데도 빈곤의 문제를 권리의 문제로 접근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사회의 뿌리깊은 인식 때문일까. 사람들 대부분은 빈곤문제의 심각성과 대책마련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하면서도 이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권리’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자기를 위해 어떤 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법률상의 힘’이라고 나온다. 사람들이 ‘권리’를 이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 혹은 사회적 기반에 근거하고 있을 때인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의 인권은 아직 권리라고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빈곤해결을 위한 요구가 ‘효율성’으로서의 대책 마련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권리로서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하는지, 그 물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유의선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사무국장)
- 2613호
- 유의선
- 2004-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