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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파업 끝났으니 노동자 길들이겠다?

엘지정유, 파업참여 노동자에게 '복귀신청서' 강요

20여 일 동안 파업을 지속한 엘지정유노조가 현장복귀를 선언했으나 사측이 공권력을 동원, 노동자들의 복귀를 방해하고 있어 '노조 죽이기'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지난달 19일 파업에 돌입한 후 서울에서 '산개투쟁'을 벌이던 엘지정유노조는 6일 현장복귀를 선언, 9일부터 출근을 시도했으나 사측이 회사의 정문을 걸어잠근 채 공권력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실 대화를 선언하며 현장으로 복귀한 노동자들의 노조 사무실 출입마저 막고 있는 상황이다. 회사는 '조합원 현장 복귀 통보에 대한 회사의 입장'에서 "집단적인 근무지 복귀는 무의미하며 개개인의 복귀의사 표명이 있어야만 한다"며 "개별적으로 (복귀신청서를 통해) 업무 복귀를 신청"한 후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각자의 집에서 대기"할 것을 공지했다. 하지만 노조는 "복귀 신청서에는 복귀 신청 후 회사의 지시에 따를 것을 서약하고 있어 전환배치, 근무지 이동, 장기간 유급휴가, 사퇴 종용까지도 예상된다"며 "노조를 말살하려는 계획"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002년 발전노조 파업의 경우에도 사측은 파업 이후 복귀한 모든 조합원들에게 '태업, 점거 등의 행위'와 '일체의 불성실한 근무'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했다. 또한 이를 어길 경우 사측의 손해배상청구까지도 '이의 없이 배상할 것'을 못박았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서약서가 "노동자에게 기본권인 파업권을 포기하는 각서와 같다"며 "이는 노조 활동 자체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서약서 작성을 강요하는 행위는 개인에게 굴욕감과 자괴감을 주며 양심·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엘지정유노조는 파업에 돌입하며 △비정규직 차별철폐 △주40시간 노동제 실시를 통한 신규인력 창출 △지역사회발전기금 출연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지난 지하철 궤도연대 파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엘지정유 노사갈등이 직권중재에 회부되면서 노조의 파업은 이내 '불법'으로 규정됐다.

이어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되자 노조는 여수를 떠나 서울에서 '산개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파업 20여 일이 지나면서 김정곤 노조위원장 등 10명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돼 1명이 구속됐고, 노조원 65명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고발당했다. 게다가 '귀족노조의 배부른 파업'이라는 정부와 언론의 사실 왜곡이 이어짐에 따라 여론에 밀려 노조는 결국 현장복귀를 선언했다. 노조는 "자본금보다 몇 배 많은 수익을 빼가는 외국자본에 대항하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산업공해의 피해자인 지역주민들을 위한 기금을 만들자는 요구"가 "귀족노조의 배부른 투쟁으로 매도되고 직권중재의 덫에 걸려 불법으로 낙인찍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자회사인 칼텍스를 포함해 엘지정유 주식의 50%를 가진 대주주는 현 백악관 안보보좌관인 콘돌리자 라이스가 이사로 있으며, 이라크전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계 석유기업 '셰브론 텍사코'이다.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엘지칼텍스정유 이익배당을 통해 셰브론 텍사코로 유출된 자금은 3천억원에 달한다. 또한 매출이 55% 증가한 데 반해 생산직 노동자는 단 2명만이 채용됐을 뿐이다.

계약직과 외주용역비는 꾸준히 늘어나 현재 엘지칼텍스정유 공장 안에는 약 600여 명의 비정규직이 있고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1/3 정도라고 노조는 밝혔다.

한편, 회사는 조합원들의 복귀를 종용하기 위해 대대적인 언론 홍보뿐 아니라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운영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