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인권위에 항의서한 전달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비정규노동법 개악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정작 이를 인권의 시선으로 적극 저지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귄위)가 '검토'만 하고 있어 인권단체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34개 인권 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 연석회의는 23일 11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냐"며 비정규노동법 개악에 침묵하는 인권위를 규탄했다. 안산노동인권센터 박현희 상임활동가는 "정부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죽음에 내몰리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확대하려 하고 있다"며 "따라서 가장 시급한 인권 현안인 이번 입법안을 조사하고 개선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권고하는 것은 인권위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입법과정 중에 있는 법령안을 포함해 '인권에 관한 법령·제도·정책·관행에 대해 조사, 연구, 그리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권고 또는 의견 표명'을 업무로 하고 있지만 오랜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권위를 방문해 항의서한과 비정규노동법에 대한 의견서를 인권위 강명득 사무총장 직무대리에게 전달했다. 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는 "개악안이 통과된 다음에야 권고를 하겠다는 것이냐"며 "정치적으로 압력이나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의문을 던졌다. 이에 강 직무대리는 "비정규직 문제가 워낙 복잡하다. 정책국에서 검토 중이다"며 기약 없이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인권운동사랑방 강성준 활동가는 "인권단체에서도 지난 6월 비정규직과 관련해 진정서를 제출했는데 5개월이 넘도록 검토만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추궁했다. 이어 "인권위가 이번 법안의 반인권성에 대해 국회와 정부를 향해 강력히 경고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강 직무대리는 '반영하겠다', '노력하겠다'라고 궁색한 답변으로 자리를 모면하기에 급급했다.
인권위는 2003년 비정규직 전담팀(TFT)을 구성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후속작업도 벌이지 않은 채 입법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검토 중'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면담을 마친 전국비정규직노조 대표자 연대회의 오민규 사무국장은 "예상은 했었지만 인권위가 그것보다 더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상 아무 답변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