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외교' 실효 없다
언론 역시 브로커들과 함께 '기획'탈북에 공생하고 있다.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본 언론은 한국인 프리랜서를 고용하거나 브로커들이 직접 찍은 테이프를 사기도 한다. 조천현 씨에 의하면 테이프 하나 당 2천 만원 선에서 거래된다고 한다. 브로커들은 한국에 있는 탈북자 가족에게 보여줄 확실한 '그림'이 생기기 때문에 언론과 공생하길 선호한다. 탈북자들을 대사관으로 밀어 넣은 후 촬영테이프를 언론에 판매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몇 시 뉴스 또는 몇 일자 신문을 보라고 확인시켜주고 '선불금'을 받는 것이다.
10월 29일 일본학교에 진입한 '어린 남매'의 조선일보 보도는 "지난해 7월 어머니만 먼저 한국에 들어가고 남매는 산 속에서 움막을 치고 생활했었다"고 했는데 조 씨에 따르면 "남매가 일본학교에 진입하기 전까지 어머니가 마련해준 안가에서 조선족의 보살핌을 받고 한국 위성TV를 시청하며 한국의 어머니와 통화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천신만고 끝에 '자유대한'의 품에 들어온 탈북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소설쓰기'로 기획탈북을 포장하고 있는 셈. 남매의 어머니는 일본학교 진입 사진을 브로커들에게 받아보고 '선불금'으로 3백 만원을 줬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보수언론들은 꼬리를 무는 기획탈북 현상이 "북한체제의 종말로 남한식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이다(월간 뉴스21, 11/4일자)"와 같은 논조로 일관하고 있다.
재중 탈북자들이 모두 기획탈북을 선망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노동당(아래 민노당)이 만난 이모 씨는 2001년 탈북해 현재 한국행을 고민하고 있지만 "조용히 갈 것이지 왜 대사관에 들어가서 소란을 피우는가"라면서, 기획탈북에 나서는 10명 중 8명은 브로커들의 꾐에 빠져 나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98년 탈북해 중국인과 결혼한 김모 씨 역시 "시끄럽게 한국에 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라를 배반하고 와서 조용히 살면 좋겠는데, 소문에 휩쓸려 가는 것"이라며 같은 반응을 보였다.
기획탈북에 얽혀 있는 상황과 행위자들이 다양한 만큼 그 해법도 다각도로 모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브로커들이 탈북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 브로커들은 1인당 평균 4백 만원, 위조여권의 경우 1천 만원까지 탈북자들로부터 갈취하고 있다. 조천현 씨는 정부가 기획탈북에 대해 '조용한 외교'를 표방하고 있는 것을 맹비난한다. "브로커들이 (기획탈북)문제를 일으키면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조용한 외교'"라고 꼬집는 조 씨는 브로커들에 대한 엄벌을 주장한다. 민노당은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해서 금품을 대가로 북의 주민을 유인하는 행위를 엄벌하도록 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정착금'이 결코 탈북자들의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브로커들이 챙기는 '선불금' '후불금'하는 돈이 모두 정착금을 노린 것이기 때문이다. 23일 민노당과 면담한 통일부의 정착지원과장 역시 "정착금이 오용되고 있어, 현금 지급을 줄이면서 정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개발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획탈북을 통해 한국에 온 탈북자가 다시 브로커가 되는 고리를 끊는 것이 시급한데 조 씨는 남한에 들어오는 탈북자들의 배경이 다른 만큼 '하나원'과 같은 일률적 교육은 아무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기획탈북은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어 민감한 외교문제를 낳고 있다. 민노당은 탈북자들을 국제법 상 '난민'이 아닌 '경제유민'으로 규정하면서 북과 중국 정부의 주권을 침해하고 내정 간섭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중국 정부는 중국에서 결혼한 여성을 북으로 강제송환하는 일이 없어야하며 60년 대기근 때 북으로 들어간 조선족이 재입국했을 때 합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한편 국제사회는 북으로 송환된 사람들에 대한 처벌 완화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민노당 조사단은 "탈북자 중 14번이나 월경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는 북이 식량을 찾아 떠나는 사람을 크게 처벌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조 씨 역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단순 탈북자들의 경우 4주 조사 후 귀가 조치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