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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분석> 인권위법 물밑 개정 중 (하)

바람직한 권한 강화! 기대반, 우려반


인권위법 개정안에 인권위의 비대화와 관료화를 초래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인권위법 제정 당시 국가기관들의 반발에 의해 무력화된 인권위의 권한이 개정안에서 대폭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대표적인 독소조항 삭제

현 인권위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인지하여 수사 중인 독직폭행, 직권남용 사건을 제외하고 수사기관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 등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인권위가 조사를 할 수 없다(제32조 1항 5호 및 제33조 2항). 이 조항은 경찰·검찰 등 대표적인 인권침해 국가기관에 대해 인권위가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상당히 무력화해 왔다.

또 인권위는 피진정인에게 출석을 요구하기 이전에 반드시 먼저 서면진술서를 받아야 한다(제36조 4항). 이는 인권침해 현장에 대한 인권위의 시급한 조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수사사건 조사금지 조항 및 서면조사 우선 조항 등 인권위법 제정 당시부터 비판받아 온 대표적인 독소조항들을 삭제했다.


대폭적인 권한 강화

개정안은 또 인권위법 제정과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대폭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인권위의 정책개선 권고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인권영향평가제 도입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개정안은 인권영향평가에 관한 검토와 개선권고 그리고 인권영향평가서를 작성하지 않은 법령·정책 등에 대한 중지 권고를 인권위의 업무 중 하나로 명시하고(제19조 4∼5호), 인권영향평가서의 작성을 국가기관의 의무로 명확히 했다(제20조의2).

개정안에서는 인권위 진정범위 및 조사대상도 확대됐다. 개정안은 법의 적용범위를 대한민국 국민 및 국내 외국인에서 국내법인 및 국내 외국법인까지로 확대했고(제4조), 인권위가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서만 조사할 수 있었던 기존의 권한을 국가기관이 자본금의 1/2 이상을 출자한 법인의 경우도 조사가 가능하게 했다(제30조 1항 1호). 이렇게 되면 인권위는 정부가 출자한 상당수의 공단과 공사, 공기업 등과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 사기업에도 구제권고를 할 수 있게 된다. 개정안은 또 진정기간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렸고(제32조 1항 4호), 이 기간 중 발생한 의문사에 대해 조사하고 구제하도록 인권위의 업무로 명시했다(제19조 7호).

인권위의 독립성 및 기능도 강화됐는데, 개정안은 인권위의 예산 편성과 관련해 예산회계법 제29조의 규정을 적용하도록 했다(제6조 5항). 이렇게 되면 국회, 법원 등 기존 헌법기관과 마찬가지로, 예산편성 과정에서 인권위의 세출예산 요구액을 감액할 때 국무회의에서 위원장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한편 개정안은 제50조의2를 신설해, 조사기간 중 공소시효의 진행 정지, 동행명령 권한과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 권한을 명시했다. 그리고 인권위가 고발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릴 경우, 인권위는 제정을 신청할 수 있다는 규정도 신설됐다(제45조 5항).

그밖에 개정안은 인권위가 지방사무소를 설치할 수 있게 했고(제16조 6항), 교정·보호시설 내 진정함 설치를 의무화했으며(제31항 8항), 권고를 받은 기관장이 권고의 이행여부 및 결과를 인권위에 통보하는 기간을 60일 이내로 제한했다(제25조 4항).


문제는 인권위의 의지

차별 업무를 인권위로 통합하는 '비대화 규정'과 상임위원과 사무총장을 겸임하는 '관료화 규정'을 제외한다면, 이번 인권위법 개정안은 인권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으로 적극 환영할 만하다. 그리고 개정안이 통과되었을 때 인권위는 지금보다 활발한 인권옹호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정책·제도 등에 대한 인권영향 평가, 1년이 경과한 진정사건의 조사, 의문사에 대한 조사와 구제 등은 굳이 인권위법을 개정하지 않고 현 인권위법을 적극 해석하는 것을 통해서도 1기 인권위에서 가능했던 업무들이다. 따라서 1기 인권위가 이런 문제에 대해 적극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법·제도적 한계라기보다는 순전히 인권감수성과 인권옹호의 의지 부족으로 보아야 한다. 인권위법이 아무리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정되더라도 2기 인권위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고리를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인권위법 제정 시에도 그러했듯이, 이번 인권위법 개정 과정에서도 법무부 등 국가기관들의 조직적 반발이 예상된다. 국가기관의 반발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인권위법 개정에 대한 국민적 지지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으며, 바로 이 대목에서 인권단체들의 적극적인 투쟁이 절실히 요청된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설립됐던 1기 인권위가 인권위의 산파 역할을 했던 바로 그 인권단체들을 무시하고 급속히 관료화되었던 경험을 상기하면, 이번 개정안에 대해 인권단체들이 마냥 지지를 보낼 수만은 없는 처지다.

결국 2기 인권위는 인권단체들과의 협의과정 없이 개정안에 성급하게 포함된 비대화·관료화 규정에 대해 집착하지 않겠다는 명시적인 확신을 주어야 한다. 또한 많은 경우 할 수 있었던 업무들을 법 규정의 소극적 해석으로 스스로 포기했던 1기 인권위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인권옹호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할 때만이 인권위법 개정안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광범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고, 이것이 인권위가 바로 서는 첩경임을 2기 인권위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