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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파장? 파장!] 디지털 감시시대, 국가인권기구가 가야할 길은?

어느 자리에선가, 자유권 운동에서 공익소송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사회운동 대개가 체득한 사실이긴 하겠지만 특히 자유권 운동은 숙명적으로 국가기관을 신뢰하지 않는다. 의제 자체가 국가의 인권침해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유의 의미가 시장의 자유로 축소되어 온 근래 들어 국가기관이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데 앞장서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대문경찰서가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농성장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무지막지하게 탄압했던 것처럼. 그러면서도 자유권 운동은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국가기구에 대해서 제소하거나 진정하는 행동을 포기하지 않는다. 예정된 듯이 패배해도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우리는 이들에게 무얼 기대하는 것일까.

디지털 감시시대, 국가인권기구의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정보인권 운동의 화두는 디지털 시대 감시의 문제이다. 지난해 에드워드 스노덴이라는 사람이 미국과 영국 등 몇몇 나라 정보기관들이 전세계 인터넷과 통신을 감시해 왔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그 충격으로 유엔이 '국가 감시'를 문제삼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국가 감시가 더욱 심각한 것은 권력의 힘으로 통신사나 인터넷회사들을 하위조직처럼 동원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감시 기술에서 돈을 벌수 있는 방법을 마침내 찾아냈기에, 국가의 요구뿐 아니라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시민을 감시한다. 이 끈끈한 네트워크로 인해 국가의 감시는 더 깊숙한 곳을 향하게 되었으며 그토록 궁금해 했던 시민들의 머릿속 '생각'을 실시간으로 읽을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통신 서비스 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시민들은 이 세계에서, 최근 출간된 책 제목처럼,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국가와 기업의 결탁 속에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은 공염불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시민들은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프라이버시에 기초한 다른 모든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저항한다. 나는 법원이나 국가인권기구가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의 아름다운 문구들을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고 있는 만큼, 단호하게 시민들 옆에 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마저도 망가졌다면 자유권 운동이 제도에서 기댈 곳이 더 이상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으로, 간절하게. 그러나 불행히도 국가인권위원회는 몇년 째 계속 갈짓자 행보이다. 이 기구는 어쩌면 정보인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 얘기를 해 보자.

사실 정보인권이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권위는 2003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보다도 먼저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제도 안에서 인정했던 독보적 국가인권기구였다. 정보운동 단체들이 사용해 온 '정보인권'이라는 용어가 인권위 결정으로 촉발된 NEIS 투쟁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2010년 인권위원들은 "정보인권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스스로 폄하하며 정보인권 보고서를 불채택하였다. 그 이후 표류하던 보고서는 2013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래도 실적만 두고 보면 정보인권 분야에서 인권위는 꽤 꾸준한 편이다. 때로는 국제적 규모를 아우르는 토론회도 꽤 된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 후 '표현의 자유'가 이 기구에서 어찌나 홀대받았는지 유엔 특별보고관이 지적해야 했던 상황과는 다소 대조적이다. 하지만 정보인권이 인권위에서 정말 제대로 다루어지고 있는지, 알리바이에 그치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의결의 내용 뿐 아니라 그에 이르는 과정을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제도개선에 이를 수 있는 정책권고가 질적으로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인권위원들은 충분히 독립적이고 원칙에 충실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인권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인권위원들

결과만 놓고 보면 올해는 나쁘지 않았다. 연초에 통신비밀보호법을 강화하라는 권고가 있었고, 카드3사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에는 개인정보 보호를 촉구하는 위원회 성명을 발표하고 주민번호 제도를 개선하라는 권고도 의결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인권위가 얼마나 비틀거렸던지 옆에서 지켜보기에 조마조마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먼저 통신비밀보호법 권고 당시는 어떠했던가. 희망버스 활동가들에 대한 휴대전화 위치추적 뿐 아니라 최근 발생한 철도노조 파업노동자들과 그 가족에 대한 휴대전화 위치추적에 이르기까지 수사기관의 과도한 통신수사가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커져 왔다. 인권위가 이제서야 이 제도를 검토하는 것은 늦은 감마저 있었다. 그러나 일부 인권위원들은 이 사안이 달갑지 않은 듯 했다. 같은 안건에 대하여 지난해 12월부터 무려 3차례의 결정 무산, 재상정을 반복했으며, 피해자, 경찰, 통신사, 전문가까지 여러 진술인이 대대적인 발걸음을 한 뒤에야 6:5로 간신히 권고를 결정하였다. 특히 그 과정에서 홍진표(전), 김영혜 상임위원은 인권위원 자격을 의심케 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통계가 의안에 없다는 이유로 인권침해를 가늠할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김영혜, 문제의 통계는 수사기관이 비밀에 붙여 이 나라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희망버스 피해가 일부 사례라거나, 위치정보가 인권침해인지 잘 모르겠다(홍진표)면서 권고 필요성을 줄곧 부인하였다. 두 의원 뿐 아니라 여러 다른 의원들도 인권위 의사결정을 국회나 법원의 의사결정과 혼동하는 모습을 보여 실망을 자아냈다. 국회에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는데 인권위가 굳이 결정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거나, 인권위 결정에 재판 선고와 같은 엄밀함을 요구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이라면 국가인권기구가 어째서 이들 기구와 독립적으로 설립되었는지 그 취지부터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카드3사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졌다. 5천만 인구의 나라에서 무려 1억 4백만 건에 해당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는데, 유출 정보에는 성명, 이름은 물론 주민등록번호, 신용등급 등 민감한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배경에는 금융지주회사의 국가경쟁력을 도모하기 위해 주민번호를 비롯한 국민의 개인정보를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공동이용하도록 한 국가정책이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자 인권위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였으나 정작 그 제도적 개선에 대한 의견에는 소극적이었다. 금융지주회사가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개인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하여, 앞으로도 계속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마케팅 목적으로만 그 사용을 제한하면 충분하다는 취지였다. 결과도 실망스럽고 과정도 실망스러웠다.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할 때 한 회사 내에서처럼 개인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면, 사업하는데 방해나 불편만 끼친다. 카드회사가 금융지주회사를 만들때 고객들에게 동의를 다 받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지주회사의 애로사항도 생각해야 한다."(한위수)라거나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게 한다면 담보 있는 사람만 대출 받는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회사가 공동이용을 하게 하고, 나중에 통제하자."(유영하)는 등 일부 위원들이 금융회사들의 입장에 선 발언을 하였다. 금융지주회사 사외이사를 역임하거나(김영혜) 금융회사들을 대리한 경력(한위수)을 갖고 있는 위원들로서는 이런 근거들이 인권 침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이들은 대체 어떤 철학으로 "인권" 위원직을 수행하고 있을까? 설마 한줄 스펙일 뿐일까?

주민등록번호제도 개선의 경우 지난 5월 목적별로 그 사용을 제한하는 안이 의결되었다. 2008년 유엔 인권이사회의 보편적 정례검토(UPR)에서 캐나다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대로이다. 그러나 이 또한 참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 위원회 성명까지 나온 사안임에도 상임위원회 2번, 전체위원회 1번에 걸쳐 긴 토론을 해야 했다. 토론이 길어진 것은, "다른 나라도 식별번호가 있고 다만 그 사용을 제한한다. 우리도 충분하다."(김영혜)라거나 "정부가 주민번호 개선 방안에서 밝힌 내용은 무엇인가?", "'프라이버시 형해화', '빅브라더'와 같은 용어는 고쳐달라", "국가 인프라를 바꿀때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생각하라", "국가 감시가 문제가 아니다. 민간이 가지고 있는 내 정보가 유출될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이상 유영하)와 같은 발언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전국민 주민번호가 전세계 인터넷에 유출된 상황에서 사태의 심각성이나 긴급성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것은 아닌지, 앞서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해 보여줬던 미온적 태도를 함께 놓고 보면 도대체 무언가 개선할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심지어 이 제도에 대한 의견이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것으로 보여질까봐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최근 가장 실망스러운 인권위의 행보는 인터넷기업협회와 MOU를 체결한 것이다. 물론 인권위가 기업 관련 기관과 MOU를 체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인권위가 국가인권기구로서 표방하는 기업인권이 무엇인지 아직도 그 전체적인 실체가 모호한 상태이다. 그런데 갑자기 인터넷기업협회와 뜬금없이 MOU를 체결하다니, 그 취지가 아리송하기만 하다. 기업인권으로 치자면 쌍용, 한전, 삼성에서 시급한 사안이 먼저 줄을 서 있지 않았던가. 또 MOU 상대가 인터넷기업협회라는 것은 정보인권단체로서 매우 섭섭한 소식이다. 인터넷기업협회는 빅데이터 등 산업계의 이해를 위해 개인정보보호 규제를 완화할 것을 주장하며 관련 연구, 국회 토론회를 주관해온 이익단체이다. 정보인권단체들이 제기한 빅데이터 관련 진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인권위가, 이 단체들과 반대되는 주장을 해온 인터넷기업협회와 협력관계를 맺은 것이다. 만약 이 MOU로서 빅데이터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인권위는 시민에 대한 국가의 감시를 감독할 수 있을까.

2013년 12월 유엔 총회는 '디지털 시대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국가 감시를 감시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효과적인 국내 감독 체계를 수립할 것을 각국에 권고하였다. 이 독립성이 국가 권력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시장 권력에 대해서도 필요한 것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 문제로 전자의 독립성이 훼손된 모습을 보였던 인권위가, 이제는 후자의 독립성에서도 의구심을 자아내는 행보를 보이는 것인가.

지난 십이년 간 인권위에 참 많은 것을 진정했다.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CCTV 통합관제센터, 경찰의 마구잡이 정보요구, 휴대전화 본인확인제, 인감증명시 지문날인 강요에 대해 진정하였다. 이렇게 진정을 하고 나면 어렵게 결실을 맺은 적도 있지만 감감 무소식인 경우가 더 많았다. 기다려서 해결되는 문제라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지만, 요즘처럼 위태위태해서는 진정의 결과가 엉뚱하지 않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 기구에 대해 더이상 신뢰하지도, 그렇다고 신뢰를 거두지도 못하겠으니 인권활동가로서 참 괴롭다.
덧붙임

장여경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