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유족들이 어마어마한 정신적, 육체적 내·외상을 치유받기는커녕, '벙어리 냉가슴'으로 모진 세월을 감내하거나 피해 보상금에 연연해 있다고 가해 책임 기관으로부터 온갖 냉대와 수모를 겪어야 하는 현주소는, 망각의 역사를 깨우기 위한 좀더 집중된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2월 인권영화 정기 상영회 반딧불은 온전한 과거 청산의 실현을 위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노력은 무엇인지를 모색해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상영작 <피노체트 재판>
1,102명의 실종, 3,197명의 정치적인 죽음, 고문 불구자 10만 명, 국외 추방자 100만 명, 사회주의 관계 서적은 물론, 네루다, 고리키, 카프카의 문학 작품들의 소각. 반테러리즘 법의 제정, 국가에 의한 노동조합의 통제. 박정희를 흠모했다던 칠레의 피노체트가 벌인 행각이다. 선거를 통해 수립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로 무너뜨려 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는 17년 동안 독재 정치를 펼치다가 1989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다. 그렇지만 엄밀한 역사적 재평가를 받지 않은 채, 군참모 총장직과 종신 상원 의원 등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피노체트의 '후임자'들로부터 보호를 받아왔다.
<칠레전투>를 통해 민중연합정부의 다사다난했던 천일천하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려는 칠레 민중들의 열망과 자발적 실천을 인상적으로 각인시킨 바 있는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은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2001년작 <피노체트 재판, The Case Pinochet>에서 피노체트 기소를 둘러싼 역사적 심판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면서 수년의 극단적 폭압 역시 칠레 민중들의 저항적 힘을 잠재울 수 없음을 입증한다. 동시에 모진 고문과 억압을 당하여 쉽사리 치유할 수 없는 슬픔이 아로새겨져 있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유려한 카메라 워크를 구사하며 담백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여전히 피노체트를 연호하며 독재 정권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가하는 이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잊혀진 듯 한 억압과 학살의 기억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며 민중(!)의 역사를 복원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숨소리와 증언에 주목하면서, 칠레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때와 곳: 2월 26일(토) 3시,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대강의실
△상영작: <피노체트 재판>
△부대행사: 염규홍(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장)과 함께 인권의 관점이 제시하는 올바른 과거청산의 방향에 대하여 나누어 보는 자리.
△상영장 찾아오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