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묻혀진 듯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면서, 청산되지 못한 과거가 남긴 상흔의 고통을 전이시키는 작품들이 상영된다. <돌 속에 갇힌 말>은 87년 대선 당시 구로구청에서 발생했던 부정선거, 폭력 시위 진압 등의 실상을 파헤치면서, 얼룩진 한국 현대사의 몸통을 체험한 감독 자신에게 각인된 폭력의 기억을 말하고 있다. <진실의 문>은 지난 98년 발생한 고(故) 김훈 씨 군의문사 사건과 이후 진상규명 과정을 당시 자료화면과 관련자 인터뷰를 주된 축으로 엮어 나가며, '진실의 문' 열기를 거부하는 은폐조작 일색인 이 사건의 전말을 고발한다. 봉인된 진실을 둘러싼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역사적 반성과 단절이 결여된 집단적 기억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새삼 환기시킨다.
진보진영이라고 일컬어지는 집단 안에서 견고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정치화 된 권력으로 자리매김한 집단에 맞서, 저항을 멈추지 않는 이들의 행보를 포착한 작품들 역시 상영된다. 가부장적인 국내 기독교의 권위를 기반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떳떳한' 조직 운영 원리로 내세우고 있는 서울 YMCA의 기만과 이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는 여성 회원들의 투쟁을 다룬 <슬로브 핫의 딸들>, 현대 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故 박일수 열사의 죽음 이후 벌어졌던 비정규직 투쟁을 보여주며, 다중의 적에 둘러싸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을 그린 <유언>이 바로 그것이다.
올해 인권영화제의 주제이기도 한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을 다룬 작품들도 있다. 학생들이 학교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물론, 사학재단의 탐욕에 대항하는 선생님을 해고한 용화여고. 사립학교의 파행적 운영과 부당한 인권 침해에 맞서 자발적 행동을 조직하는 청소녀들의 건강한 움직임을 담은 <학교이야기>, 빠른 속도와 획일화를 종용하는 디스토피아 공간에서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청소년들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애니메이션 <헤븐>, 폭력과 무관심으로 일관한 아빠를 내쫓고 한부모 가족을 꾸리게 된 곰가족의 일화를 통해 가족 내 폭력의 실상을 발랄함을 잃지 않으며 표현한 애니메이션 <누구세요> 등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어린이들이 제작 전반에 참여해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주체적으로 표출한 <우리사이>는 가족 안에서 어린이들이 인권침해를 당할 때 느끼게 되는 감정들을 엄마와 어린이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밖에도 풍요롭지 못한 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저항 행동을 멈추지 않고 농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을 진정성이 묻어나는 애정의 시선으로 성찰한 <농가일기>, 파병반대를 내걸고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강철민 이병, 그와 연대하며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농성활동을 벌여나갔던 이들 활동의 의의를 되새기는 <708호 이등병의 편지>, 죽은 노조원의 아내라는 지위로 규정된 한 여성이 느끼는 감정의 뿌리를 섬세하게 짚어낸 극영화, <크레인, 제4도크> 등도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