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인 장유주(가명) 씨는 7월 26일에 수시 1차 시험으로 대학에서 논술고사나 면접을 가질 예정인데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의 대학이 응시자 신분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여권 가운데 하나를 요구했기 때문. 하지만 장 씨는 지문날인에 반대해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았다.
주민등록법 제17조의8 제1항에 따라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은 관할구역 안에 주민등록이 된 자 중 17세 이상의 자에 대하여 주민증을 발급한다. 누구나 출생신고와 동시에 주민번호를 부여받고, 17세가 넘으면 지문을 찍고 주민증을 발급 받는다. 하지만 전국민이 열손가락 지문을 찍어야 하는 근거를 법률에서 찾을 수는 없다.
장 씨는 응시원서를 접수한 여러 대학 입학관리처에 전화를 걸었다. 꼭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혹은 운전면허증이 아니라도 학생기록부사본이나 재학증명서, 학생증으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 중앙대학교는 사진이 부착된 학교생활기록부가 가능하다고 했으나, 건국대학교는 주민등록증은 어디에서나 필요한 것이고 학생증은 위조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장 씨가 "개인 사정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고 있으며 다른 대학에서는 학생증도 받는다"고 항의하자 관리자는 "그건 그 대학 사정"이라며 무시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시 주민등록증을 비롯한 3가지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제보받은 지문날인반대연대는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문의 해보니 교육부에서는 그런 지시를 따로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신분증 관련 규정으로 학생들이 곤란을 겪지 않게 교육부를 통해서 각 대학으로 관련 내용의 공문을 보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문을 받은 각 대학에서 이를 따를지 의심스럽고 시험일까지 시간이 별로 없어 개별 학교에 대한 항의와 여론화가 시급해 보인다. 학교에서 발급한 학생증은 안되고 같은 공공 기관인 동사무소에서 발급한 주민등록증만 가능하다는 것은 학생증 위조가능성을 언급한 대학 관리자의 대답만큼이나 비상식적이다. 제시된 학생증이 의심스러우면 재학생 학생 기록부와 대조해보거나 해당 학교에 문의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측의 답은 업무 편의를 위한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지성의 전당'이라고 자부하는 대학이 전국민 지문날인과 주민등록증 발급이 의미하는 국가감시체계의 내면화에 침묵하다 못해 동조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지키려는 '소수의 다른 생각'이 대학에 들어가는 문턱에서부터 좌절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장 씨는 급한 마음에 여권이라도 받기 위해 구청에 문의했지만 그곳도 역시 주민등록증을 요구했다. 장씨는 87년 6월생이라 현재 만18세이다. 구청은 장 씨가 미성년자가 아니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며 대학 당국과 다를 바 없는 대답만을 반복했다. 외교통상부의 '여권업무실무편람'에 보면 만 18세 미만은 부모 동의서와 인감 증명 첨부로 본인의 신분을 확인한다. 하지만 만 18세 이상이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1차 신분증으로 인정한다. 그 외 선원수첩, 공무원증, 군인 신분증, 장애인 복지카드가 2차로 인정 가능하지만 장 씨에게는 무의미한 얘기다.
장 씨에게 주민등록증 발급신청 통지서가 온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그 사이 운전면허증이라도 따보려고 노력했지만 학교에 매여있는 상황 때문에 불가능했다. 지문날인에 반대해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는 장 씨가 사회의 압력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 2857호
- 지문날인,물구나무
- 조용진
- 2005-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