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주민들은 벌써 3년째 이런 고민을 하며 산다. 간신히 잠들었다가 한밤중에라도 잠이 깨면 똑같은 고민을 계속 이어가다가 밤을 새우기도 한다. 한두 명이 아니라 2천여 명의 주민들이 함께 앓고 있는 집단증후군. 며칠 전에는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 활동을 열심히 하던 도두1리 최춘호 이장이 돌아가셨다. 미군기지 확장 저지 싸움 도중에 돌아가신 주민이 벌써 열 명이 넘는다. 양심적인 의사들은 "3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는 '강제 수용'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정부는 올해 12월부터 내년 2월 혹은 3월 사이에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를 강제 수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벌써 꽤 많은 농민들이 정부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수용 승인'에 도장을 찍었다. 도장 찍고 보상금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마을에 살고 있다. 하지만 마을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다. 마을이 이미 옛 '마을'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군기지 확장 저지 싸움을 하면서 시골의 마을 공동체가 깨진지 오래기 때문이다. 수십 년 함께 살아 온 동네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한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오던 마을 공동체가 한국과 미국 정부의 정책 때문에 단 몇 년만에 깨져버렸다.
2년 전부터 평택 주민들의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알리며 전국을 누비고 다니던 문정현 신부는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단원들과 함께 대추리로 이사를 왔다. 이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지평선처럼 드넓게 펼쳐진 황새울을 바라보며 '이 아까운 땅을 미군기지로 내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각오를 다지고 또 다진다.
팽성 농민들은 바로 이 들녘에서 38만 평택시민이 6개월을 먹고 살 수 있는 쌀을 해마다 생산한다. 정말 아름다운 생명의 땅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책사업'이니, '60년 동맹국인 미국과의 국제적 약속'이니 하며 생명의 땅을 미군기지로 전환하는 정책을 밀어붙인다.
"이미 끝난 일 아니냐"라고 물어오는 시민도 있고, "어차피 소수는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라는 이도 있다. 농민들의 안타까운 상황과 진심을 알아주는 이가 이곳 평택에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팽성 농민들의 투쟁은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 대추리에서는 430여 일째 매일 밤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고, 평택역 광장에서는 10월 29일부터 무기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문정현 신부와 팽성대책위 김지태 위원장, 그리고 필자가 공동 농성단장을 맡아 함께 천막을 지키고 있다. 젊은 김지태 위원장이나 필자는 아직 견딜 만하다. 다만 칠순 노신부의 건강이 걱정이다. 하지만 결의가 가장 높은 사람이 바로 문정현 신부다. 문 신부는 "죽기 전에는 대추리에서 내 발로 걸어 나가지 않겠다"며 울기도 잘 하신다. 팽성 농민들의 상황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기 때문이다.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은 팽성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만이 아니다. 동두천, 의정부, 용산 등지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집중하려고 하는 것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화 정책의 일환이다. 전세계적인 미군의 전략적 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대중국-대북 전쟁 위협은 더욱 커지게 된다. 실제로 미군의 대북 선제공격을 포함하는 작전계획이 지난 국감 기간 동안 드러나기도 해 충격을 주었다.
우리 민족의 명운이 달린 이 문제를 평택의 일부 시민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평택범대위'는 12월 11일 제2차 평화대행진을 기획하고 있다. 지난 '7.10 평화대행진' 때는 1만2천여 명이 참가해 한반도 평화와 미군의 신속기동군화 반대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런데도 한-미 두 나라 정부는 아직 끄떡도 하지 않고 있지만.
12월 11일 평택역 광장에 10만 명이 모여보자. 그 힘으로 팽성 농민들은 생존권을 지키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민중들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반도 평화를 해칠 수 있는 미국의 전쟁계획도 막아보자. 어디에서든 전쟁은 안 된다. 특히나 우리의 의지와 무관한 전쟁은 우리의 힘으로 미리 막아야 한다.
덧붙임
김용한 님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천막농성단 공동단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