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법무부의 준법서약제 폐지 결정을 크게 환영하며
이 참에 국가보안법도 역사의 폐기장으로 직행해야 한다
7일 법무부는 6회 정책위원회를 열어 가석방의 조건으로 준법서약서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 '가석방 심사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기로 했다. 1998년 사상전향제를 대체하면서 도입된 준법서약제를 도입 초기부터 반대해 온 우리는 법무부의 '당연하지만 때늦은 결정'을 지금껏 사상전향제의 폐지를 위해 싸워온 양심수들, 인권단체들과 더불어 환영한다.
법무부의 결정대로 가석방 심사 규칙이 개정되어 준법서약제가 사라진다면, 이는 1926년 치안유지법을 제정한 일제가 1933년 사법성 형사국장 통첩, 1936년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잇따라 내놓으며 사상전향제를 도입한 이래, 무려 70여 년 동안이나 사상과 양심을 옥죄어 온 반인권적 제도를 폐지한 것으로서 실로 그 의미가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이는 해방정국에서도 유지되다 1956년 분단 대한민국에서 또다시 본격적인 제도로 안착했던 사상전향제가 1998년 준법서약제로 변형되어 명맥을 유지하다 사실상 폐지되기에 이른 것이어서 그 의미는 더욱 중대하다고 볼 수 있다.
사상전향제는 폭력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공안기관에 심사받고, 검증받아야 하는 굴종의 제도였다. 국법 준수 의지를 확인한다는 준법서약서도 본질적으로는 사상전향제를 이어받는 제도로 그간 한국 사회의 저급한 인권수준을 보여주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사상전향제가 자신의 사상을 지키고자 하는 수많은 양심수들에게 가했던 국가의 폭력을 기억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폭력에 굴종하여 마음에도 없는 사상 전향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또한 인권을 국정방침으로 설정한 지난 '국민의 정부' 하에서도 사상의 강제적 확인 제도인 준법서약제가 강요되었음도 기억한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법무부가 나서서 국법 준수를 서약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변했고,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조차 이런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합헌결정을 내렸던 사실은 우리 인권사에서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이는 사상·양심의 자유가 '침묵할 자유'를 넘어 적극적으로 자신의 양심을 추구할 자유이며, 어떠한 비상상황 하에서도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가치라는 사실을 국가권력이 앞서서 묵살해 온 우리 사회의 아픈 인권의 현주소였다.
이제 제도로서의 사상전향제는 준법서약제의 폐지와 함께 역사의 유물로 사라질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사상·양심의 자유는 여전히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사상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양심수와 수배자들을 낳고 있으며, 보안관찰법이 다시 출소한 양심수들을 법의 이름으로 감시하고 있다. 아직도 정치인들을 비롯한 보수, 수구세력은 색깔론을 퍼뜨리며 사상검증을 하려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민들은 끊임없이 국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자기검열의 족쇄 속에 갇혀 있다. 이런 법과 제도, 문화가 모두 청산되어야만 근대 시민사회가 구축해온 사상·양심의 자유, 나아가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사회의 기초를 놓게 될 것이다.
어떤 이유로도 인간의 사상과 양심은 침해될 수 없다. 이런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보안법 등 반인권적 법제도 역사의 폐기장으로 직행시켜야 마땅하다. 법무부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사상·양심의 자유를 확대하고자 한다면 준법서약제 폐지에 그치지 말고,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의 폐지로까지 적극 나아가야 할 것이다.
2003년 7월 8일 인권운동사랑방
성명/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