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자료실

<준비 2호> 2.13 합의와 한미 FTA

준비 2호 | 2007년 4월 20일
2.13 합의 이행 과정에 대해 국내외 언론에서는 갖가지 우려와 추가 협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차질’, ‘조율’, ‘또 다시 그늘’ 등 자극적인 보도내용을 쏟아내고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 송금 지연 사태, 제2차 핵 위기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는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 그리고 지난 3월 25일부터 약 일주일간 한반도 남쪽에서 강행했던 한미연합전시증원훈련(RSOI) 등 북-미간 견제와 실질적 평화 체제의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북-미 양자간 대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은 대체로 합의 내용 이행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북 언론이 언급한 6자 회담과 2.13합의

지난 6자회담 과정에서 오랜 북미 적대관계가 급진전 되면서 대북 경제봉쇄 해제가 북 인민들에게 가져올 기대효과는 적지 않다. 북 인민들의 경제적 삶의 질이 개선된다는 것은 전반적인 북 인권 개선에도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염원하는 민중들이라면 합의 이행 과정의 구체적인 언론 보도 하나하나에 촉각이 세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북 언론의 관심은 어느 정도일까.

6자회담의 과정과 2.13합의 이후 북 언론 보도 내용을 살펴보았다.(2월 1일~3월 30일간 주요 방송과 신문 보도내용) 2.13합의가 성사된 후 2월13일자 보도 외에는 “대표단 출발, 도착”, “일본, 납치문제 거론”, “RSOI 규탄” 등 2.13합의와 관련된 내용에 대한 보도 보다는 주변정보나 상대국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2월13일자 보도 내용은 어떤가. 같은 날 주요 방송의 보도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북 내 유일한 국영통신이자 국내외 정보에 관한 언론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조선중앙통신]과 국영 라디오방송인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2월 8일~2월 13일까지 베이징에서 5차 6자회담이 진행”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 방도적 문제들이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토의”
“조선의 핵시설 가동 임시중지와 중유 100만 톤 에 해당하는 경제 에네르기 지원을 제공키로 하였으며, 조선과 미국은 현안문제를 해결하고 완전한 외교관계로 나가기 위해 쌍무회담을 시작하기로 했다”

공중파 방송 매체가 아닌 주요 신문에서도 이같은 보도 양상은 마찬가지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 기관지 [민주조선]에서도 2월 14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하여 같은 내용의 보도를 간략하게 전했을 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6자회담의 진행 과정의 분위기가 급박하게 전해지고, 합의 내용이 가지는 중요성, 입장 차이에 따른 갖은 분석이 쏟아졌던 남측 언론과 해외 보도와는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9.19 공동성명의 경우에는 합의문 전문이 각 매체를 통해 공개되었고, 외무성 대변인이 직접 담화문을 발표하며 정부가 인민들과 공유하고 논의의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2.13합의의 경우 정부는 공식적 발표도 없이 언론매체를 통한 단편적 정보에 대한 보도만 진행된 것이나 다름없어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인민들이 배제된 북 사회의 2.13 합의 논의

북 체제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이해 없이 북 언론시스템을 자본주의 시스템과 동일하게 놓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북은 분단 이후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위협과 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단 붕괴로 봉쇄와 무장만이 살 길이라는 생존의 역사를 걸어 왔다. 따라서 북 언론 역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당 정책 및 혁명 사업을 선전하고 뜻을 모으는 것을 주된 목표로 존재해왔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가 정치/외교적 입장에 따라 차별화된 전달체계를 갖게 되는 것과 상관없이 인민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될 사안에 대해 관련 정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공론의 기회를 박탈하는 상황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6자 회담은 ‘경제 봉쇄 해제’ 와 ‘비핵화’라는 국가적 사안을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경제적 제제 조치 해제’, ‘핵가동 임시중단’ 등의 정보전달 차원의 활자화된 외교 사안이 아니다. 이번 2.13합의를 통해 북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와 대적성국교역법 적용 철회는 60년 이상 지속된 북에 대한 경제 봉쇄를 풀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북에 대한 미국의 경제 봉쇄는 그동안 북의 경제를 왜곡시켜온 주요한 한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경제 봉쇄를 통해 의료 기기와 의약품을 포함한 생활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물자들이 미국의 저지로 인해 북으로 반입되지 못했다. 그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인민들의 몫이었다. 또한 2.13합의 이후 논의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는 남북 민중 모두의 평화적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군사적 충돌과 전쟁으로 가는 길과 평화와 공존으로 가는 길을 결정하는 중요한 갈림길에서 그에 대한 일차적 판단이 인민들의 몫임은 ‘국민주권의 원칙’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중요한 인권 사안에 대해 모든 언론이 침묵하고 있고 많은 국민들이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 상황은 2월28일자 [민주조선]에서 한미 FTA 비밀 협상에 대해 “남조선 정부는 인민들 반발이 날로 심해지자 협상을 비밀리에 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각본대로 FTA가 체결되면 남조선인민들이 입게 될 피해는 너무나도 엄청나다.” 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논지와도 정면으로 부딪치는 부분이다. 또한 “사회주의의 기초는 인민”이라고 밝혀온 북의 공식적인 태도와도 어긋난다.

국가주의와 충돌하는 알 권리, 한반도를 관통하는 인권의 문제

다양한 입장과 분석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하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하지만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알권리를 통제하고 주요 언론을 통해 국가 정책을 선전, 옹호하려는 움직임은 비단 북 체제에서만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남측 정부 역시 FTA 협정에 대해 ‘중요한 외교적 협상 내용이므로 3급 기밀에 붙인다’고 밝히면서 철저히 밀실에서 준비하고 협상을 강행해왔다.

지난 1월10일 남측에선 <한미FTA 저지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와 농축수산 대책위가 한미FTA의 피해 심각성을 알리는 TV광고를 공동 제작했지만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사회적 책임’의 이유로 들며 ‘조건부방송가’ 판정을 내렸다. ‘분쟁이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일방적’이라는 판정은 사실상 방송 불허와 다름없다. 반면 정부는 공무원과 각 산하기관을 동원해 FTA 홍보를 벌이고 있고 최근에는 국방부가 전 장병들을 대상으로 FTA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신교육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알려져 큰 파장을 낳고 있다. 광고 심의는 사적 광고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사회 공적인 영역에서 공공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의견 광고 또는 정치적.시민적 표현 행위를 사전 검열을 통해 차단하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를 넘어 헌법상의 민주주의 원칙 및 평등권 침해와 직결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미 FTA가 체결된 후 지금까지 아직도 협상문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FTA 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남한 정부는 물리적인 방법으로 봉쇄하며 집회. 시위의 자유는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현실이다.

어떤 체제가 갖는 정치적 긍정성이나 올바름에 대한 문제를 논하기 전에, 국가주의나 전체주의가 가져올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비단 나치즘의 사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70~80년대 유신정권 하에서 잔혹한 통제와 강요된 침묵의 시대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남북 정부의 태도는 심각히 우려할 만하다. FTA라는 국가적인 협상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는 남측의 사례와 경제적·평화적 생존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6자회담 2.13합의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는 북측의 사례는 표현의 자유 및 알 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자, 한반도를 관통하고 있는 인권운동의 중요한 과제이다.
<알림>뉴스레터 수신을 원치 않으시면, 지금 발송한 메일 주소로 답장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본 메일은 발신전용으로 회신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