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노동부에서 회사·노동자 대표 서명 합의서 문구, 회사측에 일방적으로 유리
원진직업병 환자 치료대책, 재취업, 전문병원 설립 등을 둘러싸고 5년여동안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켜온 원진레이온 문제가 합의되었음에도 숱한 미해결과제를 여전히 남겨두고 있다.
원진비상대책위 황동환(34) 위원장외 2명과 원진레이온 전덕순(54) 사장은 9일 오전 노동부에서 우성 기획관리실장과 법정관리은행인 산업은행 황병호 부총재 등의 입회 아래 합의서에 서명하였다. 합의서는 "폐업위로금 5개월분의 평균임금지급, 2백5십만원의 취업대책비, 정기건강진단비 1백2십5만원 일시불 지급, 회사가 150여억원의 기금을 출연하여 공익법인 설립추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2면 참조).
이에 앞서 노동부는 지난 4일 "장기대책으로 산재병원 건립, 정부투자기관 등의 신규채용때 동일조건일 경우 원진근로자를 우선 채용하도록 노력한다"는 등의 4가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원진비대위에서 발행하는 <원진신문>의 한 실무자는 "이번 합의서는 직업병 검진과 치료대책 그리고 재취업대책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미완의 것이어서 결코 이번 합의로 원진직업병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며 제2, 제3의 합의서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이어 노동부의 재취업을 알선노력에 대해서도 "이미 지난 7월 30일에 노동부가 '정부투자기관에 책임지고 취업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했었으나, 거주지인 구리에서 출퇴근이 불가능한 안산, 충북 청주 등에 취업을 알선, 결국 1명도 재취업을 못했다"고 밝히면서, "노동부의 취업알선 노력은 말 그대로 '노력'일 뿐"이라고 회의를 표시하였다. 회사가 정기건강진단비로 1백2십여만원을 일시에 지급하는 것도 지금까지 취업을 못한 노동자들의 생계비로 사용될 것이 분명하여 앞으로 정기검진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원진지원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원진직업병, 즉 이황화탄소 중독증은 서서히 증세가 발전하는 진행성 직업병"이라고 원진직업병의 특수성을 설명하고 합의서에서 '이황화탄소 중독증 환자로 확정'된 사람에 한하여 일정액의 기금을 출연하여 치료하겠다는 것은 언제 이황화탄소 중독증이 발병할 지 모르는 사람에 대한 대책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또 "노동부의 산재종합병원 설립시기도 언제인지 분명치 않다"며 노동부와 회사의 태도에 강한 의혹을 나타냈다.
한편 이번 합의서에는 "회사, 노동자간의 이견이 생길 때에는 회사의 해석에 따른다", "관련법규의 착오, 해석의 오류 등 이유를 막론하고 임금 등 미지급분이 있는 경우 폐업위로금의 지급으로 청산된 것으로 한다"는 등의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이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관계자는 또 지난 10월 23일 원진결의대회 이후 원진비대위 간부들에 대한 구인장 발부 등의 위협이 있었다며 "이번 합의서는 독재시대의 유산인 원진노동자의 아픔을 외면한 것이고, 노동자들이 지치기를 기다려 회사측의 의도대로 밀어부친 결과"라며 분통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