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에서 벌어진 괴롭힘을 조사할 때 조합원이 한 말이다. 심야노동폐지로 시작된 싸움이지만 이제는 그걸 생각할 상황조차 되지 않을 만큼 괴롭힘으로 인해 겪는 고통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이하 유성지회)는 2011년 주야2교대를 주간2교대로 바꾸는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불이행하는 회사에 맞서 싸웠다. 회사는 불법적으로 직장을 폐쇄하고 용역깡패들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조합원들에게 소화기를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차로 치고 달아나기까지 했다. 결국 노동청의 중재로 노동자들은 공장에 복귀했지만 노동자들의 생활은 예전과 달라졌다. 사측이 만든 기업노조인 2노조에 가입하라는 회유와 협박, 차별, 괴롭힘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노조 파괴 전략으로서 직장 내 괴롭힘은 매우 치밀했고 다양한 방법을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계획된 조직적 괴롭힘은 못된 관리자가 평직원을 괴롭히는 수준을 수십 배 능가했다.
올해 1월부터 ‘유성기업 괴롭힘 및 인권침해 사회적 진상조사단(이하 유성조사단)’에서 조사한 괴롭힘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3월 17일 고 한광호 노동자가 돌아가신 후 잠시 중단된 조사활동이 재개되어 며칠 전 양적 조사 결과가 나왔다. 양적 조사는 사전 면접조사나 집단 면접 조사과정에서 나온 사례들을 바탕으로 괴롭힘의 양상과 대응, 조합원의 상태 등에 대해 질문하고 그 응답을 수치화하여 유성기업 괴롭힘을 보여준다. 괴롭힘의 대상이 민주노조 조합원이었기에 조사 대상은 유성지회 조합원으로 한정했다. 기업이 기획한 괴롭힘이기에 괴롭힘의 가해자였던 관리자나 사측노조 간부들도 정신건강의 훼손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나 조사불가능한 영역이어서 제외했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은 241명으로 전체조합원 306명의 78.8%다.
이전 조사인 ‘KT직장 내 괴롭힘’이나 ‘사무금융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 과 다르게 설계한 부분은 가학적 노무관리를 묻고 괴롭힘 대응과정에서 긍정적인 점은 무엇이었는지를 짚은 것이다. 유성기업에서 벌어진 괴롭힘은 일상적인 직장 생활에서 벌어진 괴롭힘이 아니라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 창조컨설팅이 공모하고 기획한 사건이며, 그에 대한 대응도 노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고려한 것이다.
창조컨설팅이 만들어낸 가학적 노무관리 매뉴얼
가학적 노무관리의 경험 관련 항목은 조합원 집단면접과 주요 간부 면접, 자료 조사 등 사전활동으로 만들었다. 조사단이 조합원들에게 지난 5년간 힘들었던 경험을 물었을 때 조합원들은 관리자들이 사측 노조에 비해 차별하고 매일 녹음기와 몰래카메라를 들이대니 생활이 자유롭지도 않다고 했다. 게다가 징계와 해고에 생활이 불안하며, 고소고발이 많아 경찰서와 법원에 오가느라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경험한 괴롭힘은 놀랍게도(아니, 놀랍지 않게도) 창조컨설팅과 기업이 공모한 ‘노조파괴 시나리오’ 내용과 일치했다. 창조컨설팅이 2011년 작성한 첫 번째 전략회의 문건인 「유성기업(주) 불법파업 단기 대응 방안」에는 회사의 대응기조로 철저한 채증 및 철저한 책임추궁 - 형사 →민사(가압류) → 징계 →민사(손해배상)을 제시하였다. 검찰이 압수수색한 문건과 이메일에는 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사측 노조 조합원 확보를 위한 차별, 징계경감, 업무복귀 후 관리 가능한 부서배치 및 관찰일지 작성을 통한 밀착감시, 승진·인사차별, 특별생산기여금 차별 등의 임금차별, 사측노조에 대한 잔업, 특근, 승진 약속” 등이 나와 있다.
이것을 반영한 가학적 노무관리 경험 설문 문항은 ‘(1)부서이동 또는 퇴사 강요, (2)복지혜택(휴가, 병가, 육아휴직 등 포함) 사용 불가, (3)성과급 및 승진 불이익 (4)부당 해고, 출근정지(정직) 등의 징계, (5)임금삭감, (6)경고장, (7) 일상적인 감시(화장실 통제, 몰래카메라, 녹취), (8)고소고발, (9)사측 노조와의 차별(단체교섭 미룸, 임금체계․업무배치 차별, 징계 등)’이다. 응답 결과는 예상대로 매우 높은 수치가 나왔다. (1)과 (2)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가학적 노무관리를 경험했다. 성과급 및 승진에서의 차별 50.9%,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해고나 징계43.8%, 사소한 이유나 정당한 사유가 없이 경고장 66.5%, 임금삭감 76.5%, 화장실 통제, 몰래카메라, 녹취와 같은 일상적 감시 53.4%, 고소고발 52.1%, 사측 노조와의 차별 82.9%였다. 특히 임금삭감과 사측 노조와의 차별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80%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미 노무관리가 가학적이라는 말 속에 문제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노조활동을 못하게 하거나 민주노조를 탈퇴하고 어용노조에 가입하게 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방향의 노무관리가 가학적 노무관리다. 그런 점에서 괴롭힘과 가학적 노무관리는 매우 맞닿아있다. 무엇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의할 것인가, 무엇을 가학적 노무관리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겠으나 가학적 노무관리는 괴롭힘을 노무관리의 기법으로 사용한, 기업의 의도성이 분명한 괴롭힘이다.
노조파괴를 위한 노무관리는 괴롭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창조컨설팅이 일정하게 유형화한 노조파괴 매뉴얼과 쌍을 이룬다. ‘교섭거부-단협해지-직장폐쇄-어용노조 설립-민주노조 조합원 징계 및 해고-고소 고발’은 대표적인 노조파괴 매뉴얼이다. 여기에 더해 유성기업은 민주노조 탈퇴를 위한 가학적 노무관리를 구체화했는데, 요약하면 ‘어용노조와의 임금 및 성과급, 승진 차별, 일상적 감시, 폭력과 폭언, 폭력유발과 징계 및 해고, 고소고발’이다.
괴롭힘을 경험한 노동자 67%, 감시와 징계 많아
괴롭힘과 관련한 구체적 행위를 얼마나 경험했는지 20개의 문항으로 물었다. ‘모욕적 언행, 대인관계(따돌림 등), 업무관련 괴롭힘(업무과다 및 배제), 감시통제, 신체적 괴롭힘, 성적 괴롭힘’의 영역인데 참여자의 67.6%가 괴롭힘을 당했고 거의 매일 괴롭힘에 노출된 사람들이 4명 중 1명이나 됐다.
이 중 감시 통제(월1회 이상 32.9%)와 징계 협박(월 1회 이상 31.6%)이 매우 높았다. 2번 이상의 징계를 받은 조합원이 83명에 이르며, 한 명은 4번에 걸쳐 징계를 당하기까지 왔다. 징계도 사측 노조와 비교해 민주노조 조합원에게 차별적으로 집중되고 있는데 해고, 출근정지, 정직, 견책을 받은 총인원 217명 중 유성지회 소속 근로자가 214명이고 사측노조인 제2노조 소속 근로자는 3명이다. 또한 노조 간부가 평 조합원보다 괴롭힘 경험 빈도가 더 높았는데 3개 이상의 괴롭힘 행위를 경험자가 평조합원에 비해 노조 간부가 약 15% 더 높게 나타났다.
회사가 노동자들에 대한 관찰일지를 쓰기까지 하며 일상적으로 밀착 감시를 하다 보니 감시는 차별과 폭력, 경고, 징계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민주노조 조합원이 야간근무를 하다 졸고 있으면 관리자가 달려와 경고하고 협박하지만, 사측노조 조합원이 졸고 있으면 아무런 제지가 없는 경우다.
사법적 괴롭힘이 가능한 기업편향적 경찰과 검찰의 태도
또하나 중요한 특징은 고소고발 등 법체계를 악용한 사법적 괴롭힘이 많은 것이다. 4건 이상 재판에 회부된 조합원이 33명에 이르며, 한 조합원은 15건이 회부되기도 했다. 대부분 불기소처분 되거나,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있지만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주고 있었다. 고인이 된 한광호 노동자의 경우도 11건이나 고소됐는데 이중 2건만 기소되고 나머지는 무혐의처분 받았다. 이것이 가능하게 한 것은 경찰과 검찰의 기업편향적 태도이다. 검찰은 유성기업 관리자들이나 사측노조가 한 고소고발은 신속하게 하는 반면 유성지회가 한 고소고발은 더디거나 무혐의 처분했다. 심지어 검찰은 2011년 5월 18일 이후 유성기업이 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하여는 단 한건도 기소하지 않았다. 유성기업 대표이사 유시영 등 7명에 대한 근로기준법위반 및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의 점에 대해 불구속 기소했다.(유성지회 노동자들의 재정 신청 노력으로 재판이 다시 진행 중이다.) 현대차의 개입이 분명한 자료를 입수하고도 검찰은 그걸 감추고 있었다.
생계고는 심해지고 인간관계는 파괴돼
차별은 징계만이 아니라 회식 자리, 휴가, 승진, 심지어 임금과 상여금에서 심각하게 일어났다. 특히 관리자들의 자의적인 임금 삭감(화장실 다녀온 시간을 제외하는 식)이 많아지고 출근정지나 고소고발로 경찰이나 법원에 가다보니 임금 총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5년간 임금이 감소했다는 답변이 95%나 됐으며 절반 이하로 임금이 줄었다는 응답자도 23.1%나 됐다. 생활비 부족과 부채가 증가해서 생활하기 힘들다는 답변이 99.1%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사회경제적 조건과 건강에 대한 분야 응답도 동료 관계 악화(54.3%), 가족 관계 악화 (55.6%), 대인 관계 및 사회활동 기피(58.7%)가 매우 높았다. 괴롭힘의 영향은 공장안에 머물지 않고 가족과 다른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파악한 괴롭힘의 목적은 노조 무력화
조합원들은 5년간 싸우면서 괴롭힘의 원인과 목적이 회사가 기획한 노조파괴 전략임을 알고 있었다. 괴롭힘의 원인으로 회사의 노무관리(81.5%)와 인력감축 같은 회사의 경영정책(51.1%)을 짚었으며, 괴롭힘의 목적은 ‘노조의 힘을 약하게 하려고’, ‘노동자를 회사 방침에 무조건 따르게 하려고’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조합원들도 괴롭힘의 원인이 사인간의 갈등이나 관리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
또한 민주노조를 떠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조합원들은 ‘장기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가 가장 높았다. (1순위, 2순위 응답 집계 83.4%) 이는 민주노조를 오랫동안 지켜오면서 노동자들의 권리의식도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괴롭힘을 경험하거나 목격할 때 이에 대한 대응을 노조를 통해 공동으로 하거나 가해자에게 직접 제기하는 비율이 높았다.(괴롭힘을 당할 경우 가해자에게 문제제기 33.2%, 노동조합과 대처 32.9%, 괴롭힘을 목격할 경우 피해 직원과 함께 대응 32.7%, 노조에 제보 32.4%) 이는 2015년 사무금융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 조사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이렇게 괴롭힘 상황에 대해 노조와 공동으로 대응하다보니 조합원들은 ‘동료애’와 ‘노동자 권리의식’이 높아진 것을 긍정적인 변화로 꼽았다. 이는 유성지회 노동자들이 6년째 회사의 가학적 노무관리에 맞서 싸우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힘을 만들어 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사회경제적 건강지수(웰빙지수) 조사에서 잠재적 스트레스군이 93%이고 이중 고위험군이 2명이 있을 정도로 노동자들의 건강 상황은 매우 나쁘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낼 힘을 어디서 찾고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괴롭힘 행위 중단과 경영진 처벌 요구 높아
노동자들은 괴롭힘 중단을 위한 회사의 조치로는 징계, 고소고발 중단과 사측노조 해산을 우선순위로 꼽았으며, 국가기관의 노력으로는 ‘가학적 노무관리에 대한 실태조사(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경영진 처벌’을 우선순위라고 짚었다. 현재 부당노동행위로 재판이 진행 중인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에 대한 판결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갑을오토택 박효상 대표이사에 대한 재판에서 재판부가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뤄진 점”,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서 사주를 받아 물리적 행사를 했고 지금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점”을 들어 대표이사를 법정 구속했을 때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환호했던 까닭이다.
‘괴롭힘-가학적 노무관리-노조파괴’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는 것은 노조만의 노력으로 불가능하다. 기업과 정부의 노력이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검찰이 변해야 하고 법원이 변해야 한다. 적어도 헌법적 가치를 유린하는 노조파괴를 목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제언하고 그를 위반한 기업주들은 엄중 처벌해야 한다. 한국처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제도가 없는 현실에서 적어도 행정당국과 사법부의 책임 있는 부당노동행위 근절 노력이 있어야 괴롭힘은 방지될 수 있다.
*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의는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같은 직장에서 벌어지는 행위로 한정하고 있는데 반해 유럽은 같은 직장만이 아니라 업무와 관계된 외부인-고객, 거래처 담당자에 의한 괴롭힘을 포괄한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로서 유성기업 괴롭힘 및 인권침해 사회적 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합니다.